40년전 한국전쟁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필리핀은 「보릿고개」의 비극속에 살았던 우리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부유한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신흥공업국으로 통하고,필리핀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발전의 면에서 한국이 과연 필리핀과 어느만큼 다른지 의문을 갖게 된다. 5년여전 쫓겨났던 독재자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여사가 망명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것과 함께 술렁대는 필리핀을 보면서 우리는 일종의 「동병상련」을 느끼게 된다.
이멜다여사가 돌아오던 지난 4일 마닐라공항 주변에는 수천명의 마르코스 지지자들이 몰려 환영했다고 한다. 측근과 보도진 등 2백35명을 거느리고 이멜다여사는 흡사 개선장군의 몸짓으로 돌아왔다. 그는 비행기안에서 하와이에서 객사한 남편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유해송환을 아키노 대통령과 논의하겠다고 했고,그의 측근은 이멜다여사가 우익계 국민당의 대통령후보로 지명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지금 마닐라에서는 내년 5월의 총선거때 「과부들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말이 파다하다. 고 아키노 상원의원의 미망인인 현 아키노 대통령과,마르코스의 미망인인 이멜다여사가 한판 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쑥덕 공론이다.
지금까지 여섯차례나 우파 쿠데타의 위기를 넘긴 아키노 대통령은 그동안 다음선거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수없이 밝혀왔다. 그러나 뚜렷한 선두주자없이 6∼7명의 후보가 난립하는 사태가 벌어질 경우 아키노진영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뿐만아니라 이멜다여사는 『필리핀의 국모가 되기 위해』 귀국한다고 말해왔다. 귀국후 하루 1백50만원짜리 초호화호텔에 짐을 푼 것을 보더라도,마르코스 유가족의 자금은 막강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멜다와 그의 아들 페르디난드·마르코스 2세를 앞세운 복고파의 장래가 과연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아직은 분명치 않다. 탈세·사기 등 이멜다에게 걸린 11건의 재판결과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쨌든 5년8개월전 쫓겨났던 마르코스의 망령이 꿈틀대는 모습은 과거회귀를 꿈꾸는 이 땅의 일부 움직임과도 비교됨직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국민의 저항으로 무너진 지난날은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 정당화될 수 없는 망상은 또 다른 비극을 부를 뿐이다.
뿐만 아니라 감히 과거로의 복귀를 꿈꿀만큼 「새로운 발전」이 미흡할 때에도 비극이 있을 수 있다. 필리핀의 상황에서 우리는 반성과 시사를 얻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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