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갈이란 말이 신문에 무성하다. 내년 3월께로 임박한 14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공천을 위한 후보물색에 나섰으나 선거철이면 으레 나오는 이 말의 출현이 하나도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다만 역대그랬듯이 한번 해보고 지나가는 말인지 아니면 한번 본때있게 하겠다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따름이다.여야가 강조하는 물갈이 취지는 스스로 정치를 개혁해 나가겠다는 자성의 의미를 많이 담고 있는 것 같다. 매우 다행한 일이다. 극에 달한듯한 오늘날의 정치불신,정치염증을 감안한다면 정치권은 결코 한가하게 팔짱을 끼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서너사람만 모였다면 경제 걱정하고 정치한탄을 하는 것이 우리 사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즈음의 그것들은 중증인 것 같다. 이런 분위기의 일단을 뒷바침이라도 하듯 며칠전의 한국갤럽조사는 매우 충격적이다.
이 조사에서 6·29,민주화로 화려하게 출발했고 5년 단임의 임기에서 마지막 1년여를 남기고 있는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그의 임기중 최저의 것으로 나타났다. 「잘하고 있다」 15.2%,「잘못하고 있다」 41.2%로 이것은 지난 1월의 조사때보다 0.2%나 떨어진 것. 합당으로 법석을 떨었던 민자·민주는 모두 24.5%의 지지율,「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가 33.6%로 이를 훨씬 능가했다.
13대 국회에 대해서는 이미 작년 5월 같은 조사에서 무려 78.7%가 「잘못하고 있다」는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이때 「잘하고 있다」는 반응은 불과 6.1%,대통령도 정당도 국회도 지지율에서 모두 50%에도 형편없이 못미치는 이 바닥권의 정치지수,가히 정치권에 대한 총체적 불신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수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며 돌파구는 무엇이겠는가. 답은 당연히 정치권에서 나와야할 것이다.
○정치지수 바닥권
물갈이를 많이 했다고해서 정치가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개선하려면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를 주려면 적어도 등장하는 사람부터 달라져야 한다. 양질의 정치가 있으려면 양질의 정치인이 공급돼야 함은 당연하다.
지금은 14대 국회에서 14대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2기를 막시작하려는 시점. 정치권은 이 바닥상황의 극복을 정말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해야할 분기점에 다시 서있는 것이다. 현상을 깨고 통념을 벗어나는 대전환,또 한번의 개혁의지가 발동되지 않고서는 돌파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제2기의 첫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공천작업이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정치의 요체란 현상의 운영에도 있지만 보다 우리 일상에 얼마나 기대와 희망을 갖게 해주느냐는데 있다. 지금 시중에서 증발해 버린것도 오늘 먹고 입고 하는 문제에 대한 우려가 아니다. 내일이 지금보다 나아지리라는 기대와 희망인 것이다.
재임중엔 70%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인기를 유지했으면서도 지금은 온갖 미국병의 원조처럼 비난을 받고있는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지금도 일치하는 하나의 평가가 있다면 그가 미국민에게 잃었던 자부심과 희망을 되찾아줬다는 것이다. 그 자신도 『스스로에 대한 신념을 잃은 미국의 정신적 부활을 실현시키는데 모든 힘을 집중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히고 있다.
정치란 어차피 한정된 정치인 군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라면 유권자들의 선택자체를 보장해 주는것은 정치권의 첫째 의무이다. 국민들의 정치개혁 실현은 이 후보명단을 통한 선택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먼저 질의 격상을
우선 전체적인 질의 격상을 당부하고 싶다. 질이란 지식이나 학식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기준에도 똑같이 적용돼야할 것이다. 전문성은 당연한 덕목이 돼야할 것이나 역대정권에서의 「경험」과는 엄격히 구별돼야할 것이다. 스스로의 기준들처럼 비리관련은 대소간,당내위치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1백% 제외해야 한다. 이 부분은 지금 떠들어대는 「물갈이」의 진의가 가장 잘 나타날 부분이다.
「걸핏하면 고함이나 지르고 땅바닥에 드러눕고 명패나 던지면서 천박·비속하게 구는 사람」,「전문성은 커녕 기본소양도 못갖춘 3류 정치건달들」,「대안의 시대가 왔음에도 반대만을 정치의 본분으로 알고있는 시대착오자들」은 이제 더이상 정치판에 얼씬도 할 수 없도록 원천봉쇄되어야 한다. 부패와 저질이야말로 우리 정치환경의 중요 오염원들이다.
그 생성과정 때문에 여러가지 어설플수 밖에 없었지만 13대 국회에서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단 한번도 진지하게 국민의 관심사를 토론하고 넘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수로 밀어붙이기 아니면 깽판」의 연속이었다. 무려 1백5일간이나 찬반토론을 계속하고 52대 48이라는 「기계적인」 투표결과로 이 문제를 매듭짓고 넘어간 미상원의 토머스 대법관인준의 경우는 이런 의미에서 매우 교훈적이다.
내년초부터 14대 총선,두차례의 지방자치단체장선거,14대 대통령선거 등 앞으로 1년은 우리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베풀고 있다. 투표는 늘 엉터리로 하고 정치불평은 도맡아 놓고하는 우리의 신용없는 유권자들은 제쳐두고라도 정치권은 각고의 자세로 시작부터 임해주기 바란다. 14대 국회,14대 대통령이 이끌어갈 새로운 시대에도 지금과 대차없는 사람들이 나와 벌이는 대차없는 정치를 감내해야 하는 것처럼 암담한 것은 없다.<편집담당 상무>편집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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