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주차장에서 대낮에 주부를 납치하고 몸값으로 거액을 요구한 범행은 지금 우리 사회에 번진 각종 병리현상의 압축판이라 할만하다. 갓 30살의 젊은 범인이 털어놓은 납치 동기는 착잡하고 기가 막힐 지경이다. 「강남의 주부들이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꼴이 보기 싫었고」 그래서 「빚도 갚고 집을 마련하려고」 이런 엉뚱하고 대담한 짓을 벌였다고 내뱉듯이 말했다.거침없는 자백속엔 여러가지 증세가 복합되어 있음을 간과할수가 없다. 단순하게 돈만을 노린 납치극과는 성격이 다르다. 호화풍조에 대한 질시감,비뚤어진 보복심리,그리고 한탕주의가 뒤엉켜 이런 맹랑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붙잡힌 납치범은 이 사회를 증오의 확대경으로 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소외감에 빠진데다 보복심리가 꿈틀거려 품속에 칼을 숨기고 기회를 노린 것이다. 뒤틀릴대로 뒤틀린 심정이 세상을 정상으로 볼리가 만무하다. 얼마전 잇달아 일어난 카바레 방화나 폭주살인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미움의 표시가 비슷하게 발작적이지 않은가.
호화풍조에 대한 적개심도 번뜩인다. 여성이 승용차를 몰고 다니거나 백화점에 드나드는것 조차 아니꼽게 비쳐진것 같다. 단칸 셋방에서 지내는 자신의 어려운 살림이 마치 그들의 탓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범인의 말투로 미루어 그렇다는 것이다. 주변을 이처럼 사시적으로 보면 남는 것은 질시와 원망뿐이다.
욕구불만을 일시에 충족시키려는 심사는 결국 한탕주의를 택하게 되었다. 꾸준하고 성실한 노력의 대가보다 한꺼번에 손쉽게 거금을 챙기는 방도를 생각하다 결국 납치라는 극악의 수단을 동원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줄 안다. 절제를 상실한 이상풍조는 비뚤어진 행태를 유발하는 요인임을 이번 사건에서 재확인해야 할것이다.
개인과 한 가정의 불우와 불행은 환경의 탓도 크지만 당사자의 책임이 한층 무겁다. 비록 어려운 처지에 있다해도 착실하게 살아가면서 한발 한발 전진해 간다는 자세가 있어야 불만은 순조롭게 해소된다. 홧김에 망나니 행세를 하면 자멸을 재촉할 뿐이다. 엉뚱한 비약은 꿈도 꾸지 말아야 옳다. 이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가 않다.
한편 요즘 자주 거론되는 거품풍조에도 변혁이 있어야 할것이다. 분수에 넘치는 호화와 사치는 범죄의 자극제로 작용한다. 보통수준을 웃도는 치장과 소비는 불필요한 소외감을 불러 일으키고 비행의 동기를 제공함을 깨달아야 한다. 낭비적인 겉멋과 거품은 빨리 걷어내야 건전사회가 열린다.
우리 사회의 병리를 더 이상 방치하고 무관심하게 지낼수는 없는 일이다. 절제와 검소로 기강을 바로 잡고 합리적인 사고와 생활을 키워나가야 한다. 몸의 질병처럼 사회병리도 조기치료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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