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전 주식 2세에 저가양도·위장분산등 적발/재벌보호정책 탈피의지 표출/유사사례 시효내 과세 과제로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일가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결과 1천3백61억원이라는 사상초유의 추징 세액이 부과되었다.
현대측 주장은 물론 일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이같은 세액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된 「세금없는 부의 세습관행」에 쐐기를 박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수치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세청에서도 설명하듯이 이번 조사결과는 앞으로 다른 재벌기업조사에도 똑같이 적용될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국세청은 그동안의 조사과정에서 일부 사안에 대한 과세여부를 둘러싸고 내부적으로 논란과 진통이 있었던게 사실이지만 이번 조사가 갖는 이같은 상징성때문에 과세강행쪽을 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따라 현대 과세문제는 앞으로 법정소송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 경우 법원이 엄격한 법률적 판단으로 얼마만큼 정부의지를 수용할지가 주목된다.
이번 조사에서 밝혀진 현대측의 탈세사실은 세액 못지않게 충격적인 것이다.
정 회장 일가는 비상장 계열사의 공개를 앞두고 사전에 계획적으로 이 회사의 주식을 2세들에게 넘겨 엄청난 공개차익을 안겨주었다.
만약 계열사가 그대로 갖고 있을 경우 기업경영자금으로 흡수될수 있는 부분을 개인에게 빼돌린 것이다.
국세청이 이같은 기업공개전 저가양도에 과세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같은 공개전 저가양도 수법은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이던 지난 87년이후 대부분의 공개기업들이 사용한 재테크방법이어서 앞으로 다른 재벌로 조사가 확대될 경우 과세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은 이번에 정 회장 2세들이 저가로 양도받은 주식에 대해 증여세가 아닌 소득세를 처음으로 적용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그것은 최근 법원에서 패소사례가 많은 증여세를 피하고 종합소득으로 합산돼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는 소득세를 택했기 때문이다.
정 회장 일가는 이밖에도 대부분 회사자금을 빼내 주식을 매입하거나 위장분산을 통해 2세들에게 주식증여를 하는 등 전형적인 탈세수법을 사용했다.
현대의 이같이 명백한 탈세사실은 그동안 시중에 떠돌던 현대에 대한 정치적 보복설 등을 불식시키고 국세청의 과세에 충분한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국세청이 이번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소송까지 가더라도 절대 패소치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국세청의 이번 현대조사는 단순한 세정차원을 넘어 재벌기업에 대한 정부의 근본적 인식변화라는 견해도 있다.
그동안 정부당국은 재벌기업이 갖는 사회적 의무보다는 재벌기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중시,일부 재벌의 반사회적 행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재벌기업들이 충분한 자체 생존능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더이상 정책적 판단으로 재벌기업을 보호하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이번 현대조사로 표출됐다는 풀이이다.
이런 맥락에서 앞으로 재벌기업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더욱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조사의 초점도 자본거래를 통한 부당이익이나 변칙 주식거래를 위장한 부의 대물림에 주안점이 주어질 것이다.
국세청측은 앞으로의 국세행정이 부당한 자본거래에 중점이 두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당국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높이 평가할만하지만 그 시기를 놓쳤다는 비난은 모면할 수 없다.
특히 이번 현대과세에서 86년의 현대중공업과 현대종합제철의 불공정 합병부분이 제외된 사실은 그동안 정부가 현행 세법상의 허점을 방치해 왔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국세청은 불공정 합병부분의 과세여부를 계속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부분이 이미 지난 88년부터 문제가 됐던 점을 감안할때 사실상 과세 불가능으로 결론지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기업공개전에 특수관계자에게 공개주식을 저가양도하는 수법도 지난 86∼89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5년간의 조세시효가 끝나기 전에 이런 수법을 사용했던 재벌기업들을 얼마나 적발,과세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 되고 있다.
이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현대조사는 일부 재벌기업의 관행화된 변칙적 자본거래와 재산상속·증여관행에 상당한 제동을 거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의 주식이동조사가 지난 7월부터 본격 시작된 이후 각 재벌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내부 문제점을 검토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는 사실이 그 좋은 예가 되고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정부가 이러한 정책의지를 얼마나 일관성있게 추진해가고 현행 세법상의 문제점들을 적절히 보완해 가느냐에 달려있다.
세금없는 부의 대물림 방지는 정책구호로서가 아니라 실천으로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배정근기자>배정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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