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외교 본산… 타협위한 끈기 필요/남북대사 스스럼없이 대화도 가능/냉전 사라지고 통일 눈앞에… 외교관생활 자부심【뉴욕=김수종특파원】 한국이 하마슐드 광장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1백61번째 유엔회원국이 된지 27일로 40일이 됐다. 기자는 뉴욕 이스트 강변에 자리 잡은 주유엔 한국대표부로 노창희 유엔대사(53)를 찾아 유엔외교의 이모저모와 가입전후의 에피소드 등을 들어보았다.
지난 3월16일 부임한 노 대사는 유엔가입의 현장 책임자로서 남달리 애도 썼지만 유엔 정회원국의 초대 유엔대사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외교가의 행운아가 됐다.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이제 유엔대사는 업무적으로만 본다해도 주미·주일대사에 버금하며 그 어느 외교관보다도 개인의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노 대사는 이같은 행운이 노태우대통령과의 인연에서 비롯됐고 그 인연 역시 외교관의 신분에서 맺어졌다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그는 유엔대사의 스타일에 대해 『실력보다는 다이내믹한 활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크게 자격이 안되는 것 같다』며 겸손함을 보였지만 유엔가입을 성사시킨 자긍심을 감추지는 않았다.
카리스마보다는 진솔한 대인관계로 부하를 통솔하는 편인 노 대사는 수준 높은 영어,업무의 본질을 꿰뚫는 능력을 안에서 인정받는데다,유엔가입 과정에서 미·중·소 등 유엔을 움직이는 강대국 대사들과 단시간에 안면을 익힌 것이 유엔대사로서의 강점인 것 같다.
노 대사는 동갑인 부인 이정자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유엔가입후 한달이 됐습니다만 소감이 남다르겠군요. 부임할때 가입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까.
▲직업외교관으로서 큰 행운입니다. 유엔대사 신임장을 받는 날 노 대통령께서 연내에 유엔에 태극기를 꽂도록 하고 내가 연설할 수 있게 하라고 당부했는데 원하는 대로 됐군요. 그러나 부임하면서는 무척 부담스러웠어요. 외무부내에서도 연내가입에 대한 찬반양론이 있었으니까요. 중국이 관건을 쥐고 있는 상황이어서 부임전 북경을 들러 외교소식통들을 접촉했더니 서울서보다 가능성이 높은 것을 감지했어요. 도착후 2개월동안 약 1백20개국 대사를 찾아 만나보니 확신이 생겼어요. 그 즈음 북한이 결국 가입하겠다고 나오더군요.
유엔가입후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가입전에 우리가 따라다니면서 만나자고 했는데,회원국이 되자 부탁하러 찾아옵니다. 입후보 지지해달라,결의안 공동제안국이 돼달라는 등 요즘은 하루 10여국 대사가 찾아와요. 가입하면 한가할줄 알았는데 의외로 움직일 일이 많습니다.
유엔가입과 더불어 최근 다자외교란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과연 유엔외교란 어떤 성질을 갖고 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모든 국제회의가 다자외교의 성질을 갖고 있죠. 유엔은 다자외교의 총본거지입니다. 정치,안보,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적인 문제를 전세계국가가 참여한 가운데 회의와 타협을 통해 국제여론을 만들고 국제합의를 도출하는 거죠. 따라서 문제가 당장 풀리지 않기 때문에 끈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결과가 당장 안나와도 반복되는 논의를 통해 국제적 대세가 형성됩니다.
이 대세는 어느 나라도 비난을 감수하지 않고 역행할 수 없죠. 또 유엔외교는 격식이 없는게 특징입니다. 주로 회의장이나 로비에서 만나 스스럼없이 의견을 나누죠. 뒷거래가 많은 것도 유엔외교의 특성입니다. 거의 모든 일이 비공개로 기브 앤드 테이크로 이루어지고 공식회의는 확인과정에 불과합니다.
유엔대사는 어떤 사람이 적합한 자리입니까.
▲유엔에 파견됐지만 사무국과 협상하는게 아니라 1백65개 회원국 대표들과 협상하는 자리입니다. 한마디로 다이내믹한 성격의 사람이 적격이죠. 격식보다는 사방팔방 돌아다니고 비위가 좋은 사람이 할만해요. 그리고 장기근무가 돼야해요. 다른 나라를 보면 외무장관을 지낸 사람,유엔대사로 두번째 나온 사람이 많아요.
무엇이 유엔을 움직입니까.
▲첫째 돈,둘째 군사력,셋째 도덕적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죠. 동구권이 무너지고 비동맹결속력이 약화된 지금은 미국과 그 동맹국이 유엔을 움직이는데 일단 후진국들도 안정을 바란다는 뜻에서 환영하고 있죠. 그러나 주의할 일은 이 상황이 오래가면 우리는 뭐냐는 반발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후진국들의 참여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남북한 대사끼리의 대화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격식없이 대화가 가능한 곳이 유엔이라 봅니다. 박길연대사와 너댓차례 만났지만 처음 만날때 경계심도 생기고 서먹서먹하던게 훨씬 말하기 쉬워졌습니다. 서로 상치되지 않은 이슈는 공동제안도 할수 있는데 박 대사는 성품이 부드러운 사람인데 주위의 눈치를 살펴요.
오늘의 유엔대사직은 노 대통령과의 인연이 결정적인 것 같은데 언제 첫 인연을 맺었나요.
▲81년 10월 주미공사로 내정됐을 땐데 당시 노 정무장관이 대통령특사로 15개국 순방을 떠났어요. 나더러 수행하라는 지시가 났어요. 나도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모 안나는 행동에 호감을 느꼈습니다. 그때 대통령도 나를 좋게 본것 같아요.
어릴때 외교관의 꿈을 가지셨나요. 영어실력이 정평이 나 있는데요.
▲영어실력이라니 무슨 말씀. 집안이 좀 넉넉한 편이어서 경기중학에 입학하기 전에 학원에서 알파벳을 배우고 갔는데 잘한다는 칭찬에 영어에 취미를 가졌고 영어로 잠꼬대하다가 형한테 야단도 맞았죠. 중3때 외교관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사업하는 엄한 부친성화에 대학은 서울상대를 다녔으나 공부는 고시공부만 했어요. 59년 고시합격후 잡지사 인터뷰에서 『내 목표는 대사다』라고 응답했는데 이제 다 했어요. 자녀교육,생활근거 상실 등 결점도 있지만 외교관 생활에는 도전과 변화가 있고 국가를 위해 일하는 자부심을 주기때문에 좋은 직업이라 봅니다. 특히 냉전이 없어지고 통일이 눈앞에 보이는 지금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은 좋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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