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영혼으로 노래한다. 시인은 한시대의 통찰자이자 예언자이기도 하다. 뛰어난 민족은 반드시 위대한 시인을 탄생시킨다. 생명의 빛을 밝히는 등대가 있음에 인생과 역사는 위안을 받고 시대의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의 목소리는 영혼의 통절한 울부짖음과 같아 삶의 의미과 엄숙성을 깨우쳐 준다.80여년을 이어온 우리의 현대시사는 결코 메마르지 않다. 신시가 태동한 것은 일제의 암흑기와 때를 같이 한다. 우리의 시인들은 울분과 저항을 통해 자아와 토속의 정서를 발굴하여 주옥에 비할 시작들을 남겼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계적 시인과 천하의 명시가 없음을 서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의 떳떳한 시가 있음을 자랑으로 삼는다. 신시 80년의 보고엔 언제라고 꺼내 읽으면 뭉클한 감동을 안기는 작품이 얼마든지 있음을 또한 기뻐한다.
10월은 문화의 달이다. 갖가지 문화예술의 잔치와 행사가 만추를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잔치판이 다양하고 흥겹다. 이렇게 예술의 가을이 깊어가는 가운데 한 원로시인의 처녀시집 발간 50년을 기리는 축하시제가 성대하게 열렸다.
미당 서정주시인의 첫 시집인 「화사집」이 세상에 나온지 어언 반세기,조용한 감동이 새롭기만 하다. 이 시집이 발간된 시기는 일제의 지배가운데에서도 완전한 암흑기였음을 상기해야할 것이다. 그때를 돌아보는 시인의 회고는 지금도 가슴을 내려친다.
『불우한 시대,사회인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한 의상없는 자연인의 노래,즉 벌거숭이가 되어 외친 인간 본연의 육성이었다』
우리에게 이런 시심이 있음이 얼마나 장한가. 우리에게 이같은 통곡과 정서가 있음이 얼마나 귀한가. 화사집 50년의 축하시제는 한 시인과 시단의 경사만이 아니라 우리의 예술정신의 명예와 영광으로 받아들일만하다. 낭송과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한판의 신명나는 굿판을 본듯 마음이 후련하고 벅차다.
시뿐만 아니고 모든 예술작품과 활동은 창조와 고뇌의 산물이다. 이것을 아끼고 사랑할줄 알아야 창조의 열의가 끊임없이 솟구친다. 칭찬과 애정을 잃은 풍토는 예술의 동토와 마찬가지다. 어쩐지 우리는 이런 일에 인색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자기의 것을 아끼지 않고 대뜸 세계적인 대가와 명작을 바라는 것은 딱한 노릇이다. 가꿔주지 않는 나무에서 무슨 열매가 맺을 것인가.
우리의 일상이 날로 거칠어만 간다. 합리성과 정서를 한꺼번에 잃은 것 같은 황폐감마저 느끼게 된다. 부박한 외래문화에 우리 정신의 마당을 맡겨둘 수 없는 일이다. 이젠 우리의 시를 노래하고 우리의 예술을 다듬어가야 한다. 길은 가까이 있다. 우리것을 찾아내고 우리것을 키워가는 정열에 불을 지펴야 할 것이다. 이 가을,시인의 육성에 귀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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