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 「대리전쟁」의 대표적 유물의 하나인 캄보디아전쟁이 드디어 종말을 고하게 됐다. 70년 시아누크정권을 밀어낸 론놀 장군의 쿠데타로부터 치자면 21년,공산베트남의 대리인으로 등장한 훈센정권이 키우·삼판의 크메르 루주를 무너뜨린 78년부터 쳐도 13년만에 캄보디아에 평화의 종이 울리게된 것이다.캄보디아의 「대리전쟁」은 냉전시대의 단순한 미·소 대리전쟁보다 훨씬 복잡한 뿌리를 지니고 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뿐만 아니라,이웃 중국과 베트남이 직접 입김을 쏘인 2중의 대리전쟁이었다. 캄보디아사태가 냉전종식과 함께 쉽사리 해결될 수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미·소의 화해에 이어,베트남이 고립탈피를 모색하고 중국·베트남관계도 개선되면서 캄보디아의 대리전쟁도 해결될 분위기가 익었다. 다시 말해서 캄보디아평화협정에 도장을 찍는 파리회담이 23일 열린다는 것은 냉전청산이 한걸음 나아가 「화해」를 지향한다는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할수 있다.
캄보디아의 대리전쟁이 여느 전쟁보다 복잡한만큼,협정이라는 문서 하나로 평화가 구축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평화협정은 1년반동안의 과도기를 유엔과 캄보디아 최고민족회의(SNC)의 협력체제로 거쳐,유엔감시하의 자유선거를 통해 새로운 민주정부를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정글에서 싸워온 정부군과 저항군의 병력을 70% 해체하는 것이 될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학살자로 널리 알려진 크메르 루주파가 과연 성실하게 협정을 지킬지도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전후 「줄타기외교」로 알려졌던 시아누크공은 최고민족회의 의장의 자격으로 「줄타기」를 해야될 입장에 복귀하게 됐다. 50년대와 60년대 그의 줄타기가 개인적 카리스마를 이용한 「비동행 줄타기」였다면,이제는 4개파로 갈라진 무장세력의 거중조정이 된다. 그만큼 힘겨운 협상이 될 것은 확실하다.
어쨌든 캄보디아휴전의 실현은 동남아에 새로운 질서가 들어설 가능성을 여는 장면전환이 될것이다. 이 역사적인 무대에 가장 큰 야심을 걸고 있는 것이 일본이라는 사실도 잊을 수 없다. 일본이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을 명분으로 해외파병을 계획하고 있는 그 첫 무대가 바로 캄보디아다. 얼핏 캄보디아의 평화를 우리와는 거리가 먼 공산권 정글의 상황변화로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한반도와도 직결된 국제정치의 새로운 흐름인만큼,사태의 움직임을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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