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구석마다 변칙이 성행하고 있는데 금융계 보고만 독야청청하라고 요구할수는 없다. 특히 은행·단자·증권·보험 등 금융권은 돈 장사가 본·부업인 만큼 더욱 그런것 같다. 그렇다해도 요즈음에 성행하는 일종의 변칙대출인 소위 「꺾기」의 횡포와 폐해는 지나친 것 같다. 이로인해 물의가 일고 있다. 「꺾기」는 고금리를 가져오고 이에 따라 원가고를 높여 국제경쟁력의 저하에 기여하며 결국 수출둔화에도 한몫을 하게되는 것이다. 재무부가 지금 「꺾기」를 꺾으려고 나섰다. 이용만 재무부장관은 지난 21일 『4·4분기중 은행권의 예대상계 규모를 당초 목표인 1조원에서 2조원으로 배로 늘려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을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했다.돈 가뭄에 여기저기서 휴·폐업이 속출하는 중소기업계에는 복음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체질화된 「꺾기」가 장관의 말한마디에 증발될 것인가.
우리나라의 금융관행에서 놀라운것은 기업자금이건 가계의 소비자금이건 은행의 문턱과 이자율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돈값이 비싸고 돈을 꾸지 않는 것이다. 파산이나 부도 등 신용의 하자가 없으면 돈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빌려쓸 수 있다. 이자율도 연 10%선에 훨씬 미달한다.
우리나라는 은행돈 얻어쓰기가 요즈음 같아서는 하늘의 별따기이고 이자율도 「꺾기」 때문에 명목금리(연 10∼13%) 보다 배나 높은 25% 안팎의 고율이 된다.
올해들어 「꺾기」가 극성을 떨치고 있는 것은 정부의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긴축에 따라 자금난이 깊어진 때문이다. 돈줄을 죄면 자금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겠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자금수요가 언제나 공급을 초과,자금부족이 유독 심각해 진다. 기업들은 자금의 영구흡입기 같다. 일단 대출해간 은행돈은 다시 나오지 않는다. 공장부지 등 부동산과 사업에 투입된 자금은 「씨돈」이 된다. 외국의 기업들같으면 부동산처분,투자감축 등 자구책을 선택하나 한국의 기업들은 강요받지 않는한 이 방법을 극히 회피한다. 고비를 넘기기만하면 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누가 황금의 알을 포기하겠는가. 따라서 금리가 자율화되어 자금의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한 자금 부족은 상존하게되고 금융기관의 「꺾기」는 뒤따르게 마련이다. 현재 「꺾기」의 규모는 총대출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기업은 18.9%,중소기업은 24.5%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우량대기업에 대해서도 「꺾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경련이 최근 30개 우량기업을 상대로 실시한 「기업금융비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중은행,단자사,보험회사 등으로부터 최고 50%(은행)내지 68%(단자사)까지의 「꺾기」를 강요당했다. 이에 따른 실질금리의 부담은 연 22%에 이른다. 이들은 모두가 신용평가 등급에서 상위3등급(AA3)에 속하는 회사들이다. 신용평가는 낮을수록 「꺾기」의 비중은 커지고 중소기업의 경우 1백%까지 가는것도 있다. 자금난은 무차별적이다. 삼성·현대·대우·럭키금성 등 4대 재벌그룹도 하루하루 변통해나가는 은행의 급전(타입대) 규모가 1천억원내지 1천5백억원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간판재벌그룹들의 자금사정이 이러니 업계에 금리,규모,기간,체면,시간 등에 관계없이 자금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5불문」이 유행어가 된것이 무리는 아니다. 「꺾기」는 실효금리를 높이는 외에도 가공적으로 설정한 예금계수에 따라 총통화(M2)의 증가에 기여,그만큼 통화량의 실질증가를 감소시켜 자금압박을 가중시킨다. 자금의 공급자인 은행 등 금융기관은 현행 명목(제도) 금리로는 채산성을 맞추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재무부,은행감독원 등 감독기관의 서슬로 봐서 「꺾기」가 적어도 잠시나마 수그러질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근치요법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나면 다시 되살아날 것 같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