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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개구리 소년들」/“옷이나 입었는지…”(「인간증발」을 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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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개구리 소년들」/“옷이나 입었는지…”(「인간증발」을 막자)

입력
1991.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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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7개월… 이젠 제보도 끊겨/추위걱정에 부모들 뜬눈 밤샘/간절한 심정 담은 전단 버려질땐 더 큰 슬픔이개구리를 잡으러 나간뒤 실종된 대구의 다섯 어린이 가족들은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밤잠을 못자고 있다.

가벼운 T셔츠를 차림으로 집나간 아이들이 다가올 겨울을 어떻게 날지 생각하면 군불때는 일 조차 죄짓는 심정이다.

다섯 어린이의 아버지들은 모두 일손을 놓았다.

김종식군(9·성서국교3)는 11년동안 다니던 섬유가공 회사를 그만두었다. 다섯어린이 사진이 인쇄된 대형 팸플릿을 목에 걸고 전국을 헤매고 다닌다.

다섯가족의 회의장겸 연락처로 쓰이는 김씨 집에서는 삼촌과 고모,이웃들이 번갈아 지키면서 신고전화를 받고있다. 그러나 사건직후 불똥튀는 걸려왔던 전화가 이제는 끊어지다시피 한지 오래다.

세상 사람들의 무관심이 야속해지고 스스로도 지칠때면 김씨는 지금도 아들이 어딘가에 놀고 있을것 같은 와용산에 올라간다. 『새벽녘 산꼭대기에서 목이 터지도록 아들 이름을 부르며 실컷 울고나면 다시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김영규군(11· 〃 4)의 아버지 김현도씨(46)도 7개월동안 고통으로 머리털이 빠져나가 실제 나이보다 10년도 더 늙어보이는 퀭한 얼굴로 번해 버렸다.

박찬인군(10· 〃 3)을 혼자 키우다시피한 헐머니(66)는 잠도 제대로 못자 쇠악해질대로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가족이나 이웃의 만류에도 막무가내로 손자를 찾아다닌다. 7개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해질 무렵이면 지친몸을 끌고 마을어귀에 쪼그리고 앉아 손자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은 이곡동 마을의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손자가 그립고 가엾기는 조호연군(12· 〃 5)의 할머니(50)도 마찬가지다. 할머니가 『눈이 침침하다』면 호연이는 안약을 넣어주었고 『답답하다』면 할머니 손을 잡고 한바퀴 산보를 시켜주는것도 호연이었다. 『죽기전에 호연이를 한번 더 보는것 밖에 다른 소원이 없다』며 할머니는 늘 울고있다.

우철원군(13· 〃 3)는 지난 8월16일 아들 생일때 선물을 준비해놓고 기다리기도 했다.

가족들은 그동안 굿판도 숱하게 벌였고 용하다는 소문만 들으면 거리를 마다않고 점쟁이를 찾아다녔다. 헛되고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찾은 점쟁이가 70여명에 이른다.

가족들은 갈가 나무 한그루,팬 웅덩이 하나 예사로 보지 않는다. 마을 옆 대곡공 매립장의 산더미 같은 쓰레기더미와 대구시내 거의 모든 하수구,신축 공사장 자재더미까지 한두번 들추지 않고 지나친곳은 없을 정도이다.

가족들은 더욱 괴롭히는 것은 일부 파렴치한들의 장난 전화다. 『애들을 찾고 싶으면 마을 뒷산 5부 능선 소나무 숲에 현금 4백만원을 묻어두라』는 괴전화가 걸려오는가하면 현금 1천만원을 장소와 전달방법까지 적시해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더욱 참담하게 만들었다.

TV생방송중에 종식이라고 밝힌 철없는 어린이가 『깡패에게 붙잡혀 있다』고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고 지난달에는 『엄마… 엄마』라고 흐느끼는 목소리도 누군가 전화,가족들의 가슴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경찰은 그동안 헬기까지 동원,와룡산을 이잡듯 수도없이 뒤졌고 수배전단 50만장을 전국에 살포했으며 사례금 9백만원을 내걸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경찰을 원망하고 있다. 『처음부터 형사사건으로 보려하지 않고 단순가출로 단정,공조수사에 늑장을 피웠고 지금도 국민의 여론을 의식,형식적인 수사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믿을것은 국민의 힘뿐』이라는 철원군 어머니는 그러나 『간절한 염원을 담아 돌리는 수배전단을 귀찮은 표정으로 구겨던져 버릴때마다 우리 가족들 가슴에 얼마나 큰 못이 박히는지 알아주십시오』라며 울먹였다.<대구=남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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