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가출이길 바랄뿐”/“끌려간것보단 편히 지낼텐데”/맛벌이탓 부모역 소홀 한으로/아버지,딸 찾으며 「유흥가」 17명 집에 돌려보내『저는 피해자이면서 한편으로는 공범자이기도 합니다』 잃어버린 딸을 4개월여 동안 미친듯이 찾아헤맨 지영군씨(39·건축업·서울 구로구 시흥2동 삼천리빌라 5동307호)는 늘어나는 퇴폐·환락업소와 이를 찾는 사람들이 인간증발의 주범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술한방울 입에 대지않은채 오로지 일에만 매달려 뛰어온 지씨는 딸을 찾아다니면서 새삼스럽게 어디나 할것없이 너무나 많은 유흥가,사창가에 놀랐고 그곳에 10대 소녀들이 흘러넘치는 실정에 숨이 막혔다.
『납치됐든 스스로 집을 나간 아이들이든 우리 모두가 그 아이들을 그곳에 끌어들인 공범자임을 절감했습니다』
지씨는 기막힌 실태를 알고난뒤 대학노트에 가출·실종청소년 명부를 만들고 있다. 매일밤 유흥가와 사창가를 뒤지면서 10대 접대부들에게 조심스럽게 접근,이름과 주소를 알아내 노트에 기입한뒤 부모에게 연락,데려가도록 했다.
이렇게해서 지씨가 돌려보낸 아이들은 지금까지 17명. 지씨는 얼마전 가출청소년 찾기운동을 펴고 있는 한국청소년 선도회에 명단을 넘겨주었다.
지씨의 4녀중 장녀인 유진이(18·서울 연희실업여고 3)는 현충일 휴일인 지난 6월6일 실종됐다.
아침9시께 집앞에 아버지 심부름을 나간 그길로 소식이 끊겼다. 평소 학교에서 조금만 늦어도 집으로 전화해 가족들을 안심시키던 딸이고 한번도 남의 집에서 자본적이 없는 딸이었다.
지씨는 지금까지 전단 20만장을 만들어 뿌렸으나 역시 제보전화는 안 한통도 받아본 적이 없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절망감이야 매한가지겠지만 지씨의 고통은 남다르다. 남들과 같이 자상하고 알뜰한 부모역할을 못해주었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지씨 부부는 10여년전 작은 농사를 짓던 전남 함평의 고향마을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하면서 큰딸 유진이와 둘째를 고향 할머니(66) 집에 맡겨 두었다.
부부가 함께 노점상 맞벌이를 했던 6년 이상을 두딸과 떨어져 살았다. 지씨가 틈틈이 건축설비기술을 배워 자리를 잡고 지금이 25평짜리 연립주택을 마련하게 된 지난 88년에야 두딸 할머니와 함께 살수있게 됐다.
그러나 함께 살게 되었어도 「좋은 부모」가 될수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지씨는 여전히 건축공사장일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밖에 있었고 어머니 서영자씨(36)도 빠듯한 가계를 돕기위해 인근 이모의 과일가게일을 보느라 집을 비웠다.
유진이가 없어져 버린뒤 그런 모든일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부모의 가슴을 후벼판다. 유진이가 정작 간절해했던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베풀어주지 못한것이 가슴을 쥐어뜯고 싶을만큼 한스러운 것이다.
지씨는 지난 87년 2월 유진이의 국민학교 졸업식날을 잊지못한다. 일년에 한두번도 보기힘들던 아버지가 꼬박 밤새워 6시간을 차로 달려 졸업식장에 나타나자 유진이는 펑펑 울며 식장을 뛰쳐나와 아버지목에 매달렸다. 지씨는 『지금도 눈만 감으면 그때 발갛게 언 딸아이의 고사리손 감촉이 느껴진다』며 목이 메었다.
지씨는 『착하고 심성고운 유진이는 절대로 가출을 할 아이가 아닙니다』라면서 『그렇지만 차라리 가출했다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제 스스로 선택해 집을 나갔다면 강제로 끌려갔을 경우보다는 좀더 나은 생활을 하지 않겠느냐』는 애끓는 부정의 표현이다.<김병주기자>김병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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