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돈」이라는 낱말은 본의와 다르게 타락의 대명사로 통한다. 민주정치의 기틀인 선거는 부끄럽게도 우리에게 대뜸 돈을 연상시킨다. 한발짝 더 나아가 정치자금 하면 검은 돈으로 치부하는 관념이 통념화 되었다. 선거철을 전후하면 없던 돈이 으레 쏟아져 나온다. 그것은 선거자금이라고도 하고 비아냥 거리듯 선거선심이라고도 말한다. 14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는 넉넉잡아 앞으로 6개월은 남았다. 그런데 벌써부터 야단법석이다. 여와 야의 대결이나 공천 다툼은 정치인의 문제로 접어 두기로 하자. 오히려 냉정해야할 유권자들이 선거의 선심바람에 흔들리고 있음이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요즘은 가뜩이나 행락기분에 들뜬 계절이다. 지고 피는 단풍 색깔에 취해 이리 저리로 발길이 몰린다. 여기에 편승하여 정치지망생이나 후보예상자들이 불을 지른다. 명승지엔 통·반장을 비롯한 「한표의 관광」이 줄을 잇는다는 소식이다.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 되었다.
내년엔 국회의원 총선거부터 대통령선거까지 4대 선거가 잇달아 실시된다. 나라 전체가 쉴새 없이 한바탕 들썩일 판이다. 지금 한창 떠도는 이야기론 국회의원 입후보자 한명이 적어도 20∼30억원을 뿌리리라는 예상이다. 이것도 최소가 그렇다는 소문이니 더 할말이 없다. 그래서 입에 담지 말아야할 「선거망국론」이 되풀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열이 한계를 넘으니까 사직당국의 사전 선거운동 엄단의 의지도 한낱 엄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선심의 제공만이 아니라 받는 쪽도 엄하게 다스린다고 하나 귓전에 스치는 말로 들린다. 정부와 정치권에선 깨끗한 선거,돈 안들이는 선거,예측 가능한 정치를 구호처럼 다짐하고 있으나 현실은 다르게 돌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구호와 다짐의 반복이 아니라 사고의 대전환이다. 타락한 정치,썩은 선거를 바로 잡는 책임은 유권자인 국민 자신에게 달렸다. 못난 정치인은 못난 국민이 뽑았기 때문이라는 뼈아픈 자각이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몇 10억원을 뿌린다고 해도 정작 유권자 한사람에게 돌아오는 금품이나 향응의 대가는 푼돈에 불과하다. 몇년에 한번 돌아오는 주권행사의 기회를 푼돈으로 넘겨줄 수 없음은 당연하고 자명한 사리가 아니겠는가.
민주정치의 요체는 국민의 입장에선 기회의 선택이다. 그 최고의 기회가 선거임을 거듭 강조할 이유조차 없다. 우선 통·반장이 먼저 하찮은 선심을 거부해보라. 주민의 공감과 호응은 물론이고 감히 출마예상자들이 어찌 값싼 선거운동에 열중하려는 치졸한 발상이 거듭 되겠는가.
정부의 사전운동 엄단방침과 정치인의 각성이 국민의 자각과 일치하고 병행한다면 선거 풍토의 일대 개혁은 결코 꿈에 머물지 않을것임을 장담할 수 있다.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치를 택한다는 교훈을 몇번이고 되새겨 볼만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