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높은 층이 인기라지만,낮은 층에 사는 맛도 나쁘지 않다. 특히 가을에 그러하다. 고층에서는 멀리가 잘 보이고,저층에선 가까이가 잘 보인다. 멀리 보이는 것은 콘크리트 아니면 달리는 쇠붙이들이지만,가까이엔 땅이 있다. 새벽에 환기를 위해 창을 열면 과히 너르달순 없지만 몇년사이에 나무들이 제법 무성해진 단지내의 녹지대가 내 집 마당처럼 친근하게 펼쳐진다. 나무들마다 가을빛이 완연하다. 산뜻하게 또는 칙칙하게 물들기 시작한 나무도 있고,가벼운 바람도 견디지 못하고 노란 잎을 우수수 떨구는 나무도 있다. 병든 잎 하나 없이 아직은 청청한 나무도 있지만,그 푸르름이 여름과는 판이하다. 여름내 그렇게 강렬하게 하늘 향해 번들대던 잎들이 어느틈에 땅과 화해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그 안에 흙빛이 어렴풋이 가라앉은 푸르름은 수굿하고도 쓸쓸하다.나무에 비해 풀꽃의 운명은 더욱 멋없다. 현관 앞 화단에선 여름내 얼마나 많은 분꽃이 피고 지고 했는지. 불볕 더위가 식어갈 저녁무렵이면 아이들의 웃음소리처럼 자자하게 피어나는 분꽃을 따서,나는 손녀에게 분꽃피리를 만들어주곤 했다. 분꽃을 따서 밑둥을 약간 잘라내면 꽃술이 소르르 쉽게 빠지고 작는 나팔모양이 되고,그걸 불면 삐익 하고 단조로운 소리가 난다. 나는 소리보다도 분꽃을 분 아이의 작은 입술이 귀여워,아이를 데리고 들고 날때마다 그 짓을 하기를 즐겼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짓을 할수가 없었다. 방석처럼 크게 퍼진 분꽃포기는 병색이 완연했고,가까스로 핀 몇송이 안되는 꽃도 작고 활짝 피지 못하여 차마 딸수가 없었다. 그대신 새까맣에 영근 무수한 씨를 달고 있었다. 내가 여름내 딴 꽃은 씨를 맺지 못하였겠지만 손녀에게 어릴 때 불던 분꽃피리의 추억을 남겨주었다. 내일이라도 찬 서리가 내리면 그 고마운 분꽃나무가 폭삭 땅으로 무너져내린 꼴을 보게되리라.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쓸쓸하기만 한게 아니라 깊은 평화가 느껴짐은 나의 생명력 또한 나 몰래 은밀히 땅으로 침잠할 준비를 하고 있었음인가.
이른 아침에 가까이 볼수 있어서 좋은 것 중에서 산책하는 이들을 빼놓을수가 없다. 아이들을 데리고 조깅하는 젊은 아버지나 손잡고 산책하는 부부도 보기좋지만,내가 기다리고 혹시 안나오는 날은 걱정되는 이는 두쌍의 노부부이다. 한쌍은 영감님이 반신불수여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아주 힘들게 한발 한발 걷는다. 그 곁을 마나님이 그림자처럼 띠라다니지만 결코 부축해주지는 않는다. 다른 한쌍은 마나님이 반신불수여서 역시 지팡이에 의지해서 어렵사리 걷고 그곁을 영감님이 따라다닌다. 영감님도 마나님을 손수 부축하진 않고 그냥 따라다니기만 하지만,가끔 손수건을 꺼내 힘들어하는 마나님의 땀을 닦아주는 걸 보면 여간 자상한 분이 아닌 것 같다. 몇해전까지만해도 노인네들이 너무 열심히 운동을 하거나 건강에 관심이 많은 걸 보면 울컥 싫은 생각 먼저 들곤 했었다. 특히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다니는 노인은 안보고 싶어 외면했었는데,그것도 나이 값인지 나는 요새 그 두쌍의 노부부의 마지막 열심을 바라볼 때마다 깊은 감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리하여 그들을 위해,또한 나를 위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도문을 경건히 바치게 된다.
『될수만 있다면 저를 떨어뜨리지 마시고 저기 남아 있는 저 모과들처럼 매달려 있게 하여주소서. 어느 가을날 노랗게 익거든 그런 날에 당신의 품으로 저를 거두어 주소서』
아파트단지에 모과나무는 없지만 그 기도문은 모과나무와 함께 떠오른다. 마음 한구석에 모과나무를 바라보지 않고는 그 기도문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 기도문은 근래에 어느 책에서 읽어서 알게 된 조각가 최종태교수의 기도이고 그가 그런 기도를 하게 된 사연은 더욱 아름답다. 『우리 마당에는 모과나무가 한 그루 있다. 금년에는 모과가 너무 많이 열러서 걱정을 많이 했다. 봄 날 소독하는 사람들이 왔는데 떠들어대는 말인즉 「왔다 맘대로 열어뻔졌네」 하는 것이었다. 그 남도 사투리가 어찌나 절묘한 것이었던지 가끔씩 생각이 난다. 저걸 다 놔두면 나무가 견뎌내지 못할 것같고 똑같은 놈들이 매달려있는데 어떻게 솎아주나 매일 같이 걱정이었다.
한데 날이 가면서 하나씩 두개씩 떨어지더니 이제는 있을 만큼만 있고 말하자면 저희들끼리 다 솎아내서 이쁘게 커가고 있다. 자연의 섭리란 참 묘하구나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섭리라는 것이 참으로 겁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모과나무 밑을 지날 때마다 나는 기도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