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반전… 부시 정치승리/인종문제등 보수화 전망【워싱턴=정일화특파원】 클래런스·토머스의 연방대법관 인준과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은 미국의 정치현실을 그대로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토머스 판사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연방대법관에 지명된후 무려 1백7일 동안 엄청난 뉴스 제목감들을 제공했다.
어떤 신문은 『토머스가 대학에 다니면서 마리화나를 피웠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토머스측은 이를 시인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토머스 지지자들은 이 문제가 충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를 기다린후 『그건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땐 학생들의 풍조가 그랬다』라고 해명해 그런대로 별탈없이 고비를 넘겼다.
이어 청문회가 시작됐다.
토머스가 민권문제에 극히 부정적이라는 여러가지 증거가 제시됐다. 흑인들이 쿼타제,노인복지기금 등을 기본적으로 반대한다는 주장이 수많은 데이터와 함께 제시됐다.
토머스측은 『가난한 흑인아이나,가난한 백인아이나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왜 흑인아이만 더 우대를 받아야 하느냐. 나는 조부와 홀어머니로부터 홀로서기 철학을 배웠고 이것이 진실로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고 응수했다.
전미국변호사협회는 흑인대법관감 23명을 뽑은 일이 있는데 토머스는 여기서 제일 하위 그룹에 속한다고 했다. 그는 연방 대법관을 맡을만한 재판도,교수도,연구도 한일이 없다는 것이다. 43세인 토머스의 전 경력을 다 뒤져봐도 이 젊은 고등법원 판사가 연방대법관에 임명될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아무데서도 찾지 못했다는게 조지·미첼 상원민주당 원내총무,하워드·메첸바움의원 등의 노골적인 주장이었다.
이같은 토머스를 두고 한때 그를 법률고문으로 썼으며 워싱턴에 처음 등장시킨 바 있었던 존·댄포스의원(공)이나 오린·해치의원(공)은 『토머스야 말로 능력있고 정직하고 성실한 대법관감』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두고 상원법사위는 토머스를 연방대법관으로 인준할 것인가,안할 것인가를 표결에 붙여 7대 7 동수를 이뤄 결국 법사위 결정을 마무리짓지 못한채 상원본회의의 직접표결로 이관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상원본회의가 표결에 들어가기 직전 성적희롱 사건이 터졌다. 엄청난 사건처럼 보였다.
연방 대법관에 지명된 사람이 과거 상관의 지위를 이용하여 여자 부하직원에게 엄청난 성적추언을 마구 지껄였다는 것은 비록 그것이 10년전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용납되지 못할만했다.
원래 이 문제는 FBI가 비밀리에 조사하여 그대로 넘어가려 했던 것인데 누군가가 이를 신문에 흘려 공포되자 상원본회의는 표결을 1주일간 연기시키고 법사위로 하여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했던 것이다.
기라성같은 증언자들이 3일간 상원법사위 청문회에 나가 연방상원의원들과 긴장어린 문답을 주고받았다.
오클라호마대 법학교수인 애니타·힐(35)은 토머스가 기회있을 때마다 그녀에게 음란영화를 본 얘기를 한것,시도때도 없이 『가슴둘레가 얼마냐』 『누가 내 콜라에 음모를 넣었나』 등의 짙은 농담을 한것을 전미국인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증언했으며,이 증언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4명의 「증언자의 증언자」까지 동원했다.
토머스 판사는 연방대법관 인준은 고사하고 현직인 고등판사직마저 내놓을지 모른다는 강력한 우려가 나왔다. 성적희롱 사건은 24시가 되풀이해서 TV에 방영되고 연 3일 동안 신문 1면의 머릿기사가 됐다. 토머스는 이제 영영 망해버린것 같이 보일만 했다.
15일의 상원본회의에서는 토머스의 성적추언,무능력,무철학에 대한 한바탕 비난의 화살이 다시 쏟아졌다.
하오6시의 투표직전 토머스지지자 대표들인 공화당 원내총무 봅·돌,토머스의 대부격인 존·댄포스의원은 『갖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토머스 판사를 지지해준 여러분에게 감사한다. 직장에서의 성적추언문제,FBI문서의 유출문제 등은 뒤에 다시 거론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결론발언을 했다.
상원본회의의 투표는 52대 48로 토머스의 승리였다. 표결후 오린·해치의원은 『토머스 판사는 밑바닥에서 정상에 오른 사람이다. 투표가 밑바닥이지만 훌륭한 대법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토머스 판사의 어머니 레오니·윌리엄스여사는 『그동안 내아들을 헐뜯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토머스 드라마는 3개월만에 끝났다.
1백7일을 끌어온 토머스 드라마가 극적인 반전으로 막을 내린데는 민주당의 이탈표가 큰 몫을 했다. 민주당 소속의원 11명이 예상을 깨고 찬성표를 던진 반면 공화당에선 2명만이 대열에서 이탈해 반대표를 던져 52대 48,박빙의 차이로 인준을 얻은 것이다. 48표의 반대표는 대법원판사 인준사상 가장 많은 반대표로 기록될 불명예스런 결과이다. 하지만 이번 토머스파동은 부시 대통령에게는 일단 정치적 승리를 안겨줬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점은 토머스 판사의 인준으로 9명으로 구성된 미 대법원의 보수적 색채가 더욱 짙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낙태와 고용,의료 등 미국사회의 민감한 현안들에 대한 보수진영의 결정권이 더욱 강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이런점에서 토머스 판사의 인준파동은 미국사회의 뿌리깊은 인종주의와 성차별 문제를 뚜렷이 부각시키고 미국사회를 분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함으로써 장기간 그 파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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