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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이미영양 소식끊긴지 19개월(「인간증발」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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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이미영양 소식끊긴지 19개월(「인간증발」막자)

입력
1991.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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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길 딸마중 기쁨 산산이…/여상 1학년… 학원마친뒤 행불/괴전화만 1주일 간격 걸려와/아빠는 슬픔에 일 그만두고 여동생은 자폐증세김성길씨(41·여·서울 영등포구 신길6동 우진아파트 12동105호)는 밤늦게 학교에서 돌아오는 큰딸 이미영양(16·서울 동광여상 야간 1)을 마중나갈때가 하루중 가장 즐거웠었다.

학교와 학원공부에 쫓겨 새벽같이 허겁지겁 뛰어나가느라 제대로 얼굴도 볼수 없는 큰딸을 늦은밤 호젓한 시간에 아파트단지앞 버스정류장에서 맞아 집까지 함께 걸어들어오는 단 몇분이야말로 모녀의 정을 담뿍나누는 행복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제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듯한 큼직한 책가방을 받아들면 미영이는 엄마의 팔짱을 끼고 어린아이처럼 그날 있었던 얘기를 재잘댔다.

지난해 3월15일 평소와 다름없이 밤11시께 김씨는 버스정류장에 나가 딸을 기다리면서 혼자 대견한 미소를 지었다. 며칠전 함께 걸으며 『너 이담에 뭐할거니』라고 묻자 미영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줄거야』라고 대답하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록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었으나 어릴때부터 길을 가다가도 가난하고 어려워 보이는 사람들을 그대로 지나치지 못할만큼 정이 많았다.

그러나 이날밤 이후 두 모녀는 만나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30분 이상 지나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애써 방정맞은 생각이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자정이 넘어서도 모습이 보이지않자 다리가 떨려 더이상 자리에 서있을 수가 없었다.

김씨는 인근 공중전화로 미영이의 친구집들은 물론 친척집·학교·학원 등 사방에 미친듯이 전화를 해댔다.

학교 친구들로부터 『미영이가 오늘 결석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눈앞이 캄캄했지만 곧 『그럴리 없다. 버스가 고장나 늦게오는 것이겠지』 하는 부질없는 기대로 꼬박 정류장에서 밤을 새웠다.

미영이는 이날 아침 여느때와 같이 도시락 2개를 넣은 무거운 가방과 메고 쾌활하게 인사한 뒤 집을 나섰다. 구로구 오류동 학교근처 타자학원에서 하오3시까지 수업과 연습을한 미영이는 하오4시부터 시작되는 학교수업에 나타나지 않았다. 학교와 학교사이는 한산한 주택가로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 학교친구들은 이날 아무도 미영이를 보지못했고 학원동료들은 학원에 나온지 불과 보름밖에 안된 미영이를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며칠동안 등교길의 가게,집들을 모두 찾아다녔으나 단 한명의 목격자도 찾지 못했다.

경찰에 신고했으나 『가출일지도 모르니 일단 기다려 보자』는 대답만 들었다. 김씨는 『미영이의 성격이나 생활태도,꽉 짜여있는 하루 일과를 보더라도 몹쓸 친구들과 어울려 가출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영이가 실종된 뒤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평소 술을 입에도 대지않던 아버지 이경종씨(45·이용업)는 일도 그만두고 술취해 귀가해 울며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아졌다. 여동생(15·중 3)마저 학교가는 것 외에는 사람을 만나기조차 두려워하는 자폐증세를 보이고 있어 부모 가슴을 더 아프게 하고 있다.

이들을 더욱 못견디게 하는 것은 허위제보와 장난전화이다.

실종 10여일 후에 일간지와 잡지에난 광고를 보았다는 30대 초반 남자가 『미영이를 데리고 있으니 부산 해운대 모횟집으로 오라』고 전화를 걸어 밤차를 타고 내려가 해운대일대 횟집뿐만 아니라 술집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허탕이었다.

이 남자는 아직까지 1주일 간격으로 『미영이가 임신했다』 『더이상 언론에 보도해 찾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등의 이야기만 간단히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 행패를 계속하고 있다.

김씨는 얼마전 「실종자가족협의회」 부회장직을 맡았다. 같은 처지의 부모들끼리 힘을 합치면 뭔가 단서가 잡히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씨 부부는 요즘도 전국 곳곳을 헤매고 있다.

얼마전 김씨는 미영이가 공휴일이면 자주찾던 여의도 롤러스케이트장에 갔다가 뜻밖에 같은 생각으로 이곳에와 서성이던 남편 이씨를 만나 끌어안고 운일도 있었다.

김씨는 『미영이가 쓰던 방문을 열때마다 꼭 방안에 앉아 「엄마」하고 나올것같아 가슴이 미어진다』며 『딸자식가진 부모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누군지 모르지만 생사라도 알려달라』며 통곡했다.<김광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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