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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정유리양 행불70일/「인간증발」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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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정유리양 행불70일/「인간증발」막자

입력
1991.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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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아이를 모르시나요/방학중 안산부모 집 놀러갔다 20대 남자에 끌려가 소식끊겨/엄마·아빠 떠돌이 막일… 부여서 할머니와 국교생활『우리 아들,딸을 찾아주세요』 어느날 갑자기 생사조차 알수없게된 가족들을 찾으려고 애태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납치와 인신매매,가출 등으로 인한 「인간증발」은 우리사회의 심각한 고질이 돼가고 있으나 아직 가족차원의 문제로 머물러 있고 실종자 가족협의회의 자구적 가족찾기 활동도 성과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유흥과 향락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인간증발의 수렁」은 곳곳에서 가정과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실종과 인간증발의 심각성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고발한다.<편집자주>

벌써 70일째. 생사도 알수 없는 딸의 실종은 날이 갈수록 가족들의 고통을 키워주고 있다.

충남 부여 시음국교 6년 정유리양(11)은 가슴을 쥐어뜯는 부모에게 「인신매매의 가능성」이라는 막연한 추측만 남긴채 오늘도 소식이 없다. 『살아만 있었으면』하고 기도하던 부모는 『죽었다면 시체라도…』라고 생각하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유리는 지난 8월5일 하오8시40분께 경기 안산시 원곡1동 842 라성연립 앞길에서 20대 후반의 남자에게 납치됐다. 여름방학을 맞아 안산에서 맞벌이를 하며 사는 부모를 만나러왔을 때였다.

목격자는 5살배기 2명·3살배기 1명 등 사촌동생 3명과 인근 과일가게 종업원 정모군(13) 등 모두 4명.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년 여드름 자국이 있고 콧수염을 기른 20대 후반의 남자가 사촌동생들과 함께 놀고 있던 유리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동안 소곤거리다 손을 잡고 갔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유리에게서는 물론 범인으로부터 단한차례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다. 「몸값요구」가 납치의 목적이 아닌 것이었다.

유리의 부모 정원식씨(40)와 김순옥(33)는 충남 서천에서 남의 땅을 부치며 살다 89년 4월 자식들을 할머니에게 맡겨둔채 무작정 안산으로 왔다. 지난해 10월 두동생이 부모를 따라 안산으로 옮길때 유리는 할머니와 함께 살겠다며 시골에 남았다.

정씨 내외가 사는 안산집은 연립주택의 지하단칸 세방. 대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4평짜리 방 6개가 지하계단을 중심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벌집」이다. 아버지는 반월공단 철강회사의 잡역부,어머니는 식당종업원 일을 나가다 유리가 실종된 뒤에는 집에서 전화통만 바라보고 있다.

사건직후 부모는 안산경찰서를 찾았다. 안산서는 원곡1동 일대 39개 연립주택의 지하벌집 등을 특별호구 조사하는 등 탐문수사를 벌였으나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내인근의 야산과 공원,시화지구 철거지역의 빈집 수색도 성과는 없었다.

안산시의 도움을 빌려 현상금 1백만원을 걸고 흑백전단 9만5천장,컬러벽보 5천장을 뿌렸으나 성과는 장난 전화가 수십차례 걸려온것 뿐이었다. 유리의 부모도 전단 1만8천장을 따로 만들어 들고 경인지역의 역주변을 이잡듯 돌아다녔지만 유리는 찾을 수 없었다.

안산서는 형사계 1개반을 전담반으로 지정,수사에 나섰다가 실마리조차 잡지못하게 되자 수사자체를 포기한 상태다. 유리양 사건은 이렇게 잊혀져 가고 있다.

유리가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충남 부안군 양화면 상촌리는 부여읍내를 오가는 버스가 하루 4차례 밖에 없는 오지. 유리가 다닌 시음국교는 전교생을 톨톨 털어봐야 6학급 1백9명밖에 되지 않는다. 인신매매나 납치는 남의 나라 말이었던 곳이다.

부모를 만나러 도시로 떠나는 유리를 부러워했던 급우 22명은 텅빈 유리의 책상을 바라보며 어른들의 원망하고 있다.<안산=홍희곤기자>

◎전단·탐문… 힘겨운 시민들 자구/“경찰력 한계” 시민련등 발벗어/자원 「특공대」 조직 유흥가 뒤져 개가도/“모두 피해가능… 사회원인 제거 동참을”

잃어버린 자녀들을 되찾기위해 시민들이 힘겹게 뛰고 있다.

지난 89년 4월 「범죄의 흉포화,무질서와 부도덕성,폭력 등 각종 사회병리 현상을 시민의 힘으로 바로잡기 위해」 교수·출판인·교사·성직자 등 24명이 발기한 「민주시민운동연합」(민시련·의장 전재혁·48)이 본격적으로 실종자찾기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데 이어 지난 8월에는 민시련 산하에 실종자녀를 가진 부모들의 모여 「실종자가족협의회」(공동회장 최낙균)를 구성했다.

이밖에 다소 성격은 다르지만 사단법인 한국청소년선도회가 지난해 11월 「가출청소년찾기본부」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며 YMCA 등 시민단체에 신고전화가 설치·운영되고 있다.

시민들이 직접 실종자를 찾는일에 나서는 것은 현실적으로 경찰 수사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

실종·가출 청소년들은 해마다 그 숫자가 크게 줄어들고 있으나 아직도 매년 2∼3만명에 이르고 있고 이중 끝내 행방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1만여명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은 『일단 신고를 받아 182센터에 명단을 입력하고 1∼2주후까지 귀가하지 않으면 수사를 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대구 개구리잡이 소년과 같이 사회문제가 되거나 명백히 형사사건과 연루된것이 아니면 사실상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 『실제로 민간단체들의 캠페인과 전단살포,매스컴을 통한 홍보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 그동안 이 운동에 참여한 민시련 박필균이사(49)의 분석이다.

민시련은 지금까지 「이 여자를 찾고 있습니다」라는 전단 수십만장을 작성하고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로 「특공대」까지 조직,직접 유흥가·사창가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이들은 이 방법으로 지난해에만 접수된 4백41건중 73%를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가출청소년찾기본부」도 유흥업소 등 탈선 청소년들이 있을만한 곳을 찾아 이들을 설득,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실종자가족협의회」는 지난 9월19일 서울 청량리역일대에서 시민과 인근 유흥업소 업주들에게 자녀를 찾아줄것을 눈물로 호소했다. 대부분 장성할 딸의 부모인 회원 1백20여명은 하나같이 『이같은 일이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들 오는 17일 서울역 광장에서 대대적인 「실종자찾기 시민궐기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들 시민단체에서 분석하는 실종의 유형은 ▲전문 인신매매단에 의한 납치 ▲가출 ▲무허가 직업소개에 의한 것 등으로 이들은 일반 휴흥업소를 거쳐 퇴폐업소,사창가,낙도 등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떤 경로를 통하든 이미 심신이 망가질대로 망가져 자유로운 상태에서도 귀가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민시련측은 『일을 당한 부모와 가족의 고통,파괴된 삶을 생각한다면 단 한명의 실종자가 있더라도 이를 찾아주는 시민운동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한다.

「실종자가족협의회」 회원들은 가정과 사회생활까지 엉망이된 채 아무 기약없이 희망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회원들은 『인권과 인간애가 짓밟히는 반도덕적,반사회적 비극을 이 땅에서 뿌리뽑기 위해 시민모두가 실종자를 찾기위한 노력을 함께하고 실종자가 양산되는 사회적 원인을 제거하는데 동참해달라』고 거듭 사회를 향해 호소하고 있다.<송용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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