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영웅 아웅산 딸… 88년까지는 「보통주부」/정치야심 적어 국민결집 상징적역할 수행91년도 노벨평화상은 치열한 경합끝에 미얀마(구 버마) 민주화지도자로 2년3개월째 가택연금중인 아웅산·수지여사(46)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미하일·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일반인의 예상대로 수상자로 결정됐던 상황과는 달리 금년엔 출중한 후보가 없이 기독교 자선단체인 구세군,남아공 인권운동가인 넬슨·만델라 등 80여단체 및 개인을 두고 예측불허의 추측만이 난무했다.
수지여사는 최근 미소의 핵무기 폐기선언 등 일련의 국제적인 데탕트 분위기속에서 자유와 민주를 위한 비폭력투쟁의 공로가 인정돼 노벨평화상을 수상케 됐다.
그녀는 이미 지난 7월 유럽의회로부터 연례인권상을 받음으로써 유력한 평화상 후보물망에 올랐다. 바츨라프·하벨 체코대통령도 미얀마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적 환경조성을 기대하며 그녀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그녀는 미얀마 독립투사로 국민적 추앙을 받던 아웅산 장군의 딸로 필리핀 항쟁을 민주화로 이끈 코라손·아키노 대통령이나 파키스탄의 베나지르·부토여사에 흔히 비견돼왔다.
그러나 그녀가 사실 일약 미얀마민주화의 「마지막 희망」으로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된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수지여사는 원래 15세때 영국으로 유학,옥스퍼드대에서 공부했으며 그곳에서 영국인교수 마이클·아티스와 결혼해 두자녀를 두는 등 지난 88년 4월 노모의 간병을 위해 귀국할때까지만 해도 사실상 정치에는 별관심이 없던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러나 귀국후 그녀는 조국이 억압과 궁핍으로 처절한 상황에 처해있음을 보고 「귀족적」 삶을 마다하고 반독재투쟁 대열의 선봉에 서기 시작했다. 수지여사는 「랑군의 도살자」로 불리던 네윈 군사정권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정권교체를 위한 「국민협의위원회」 설치를 제의,좌절해있던 미얀마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녀의 영도아래 민주화 열기가 정권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이르자 군사정권은 수지여사를 가택연금하는 등 온갖 탄압을 자행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의 총선에서 수지여사 주도의 국민민주연맹(NLD)은 전체의석 70%를 휩쓰는 압승을 거두어 국민의 뜻이 민주화에 있음을 입증시켰다.
NLD는 여세를 몰아 민정이양을 요구하고 있으나 군사정권은 정권유지에만 골몰하고 있다. 외교소식통들은 그녀가 정치적 야심이 적어 실질적인 리더십 발휘보다는 국민결집의 상징적 역할을 해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수지여사는 영국생활 동안에도 자녀를 미얀마에 보내 승려교육을 시키고 고유의상을 고집하는 등 「조국애」가 자별한 민족주의자여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국민의 지침이 되고 있다.
수지여사의 노벨상 수상은 미얀마 민주화요구를 외면해온 군사정권에 적지않은 심리적 압박을 가할것으로 보인다.<조상욱기자>조상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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