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의 양의성부시 미대통령의 핵삭감선언과 이를 능가하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핵감축 조치로 세계가 드디어 군비경쟁에서 군축경쟁과 안보협력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인류를 핵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킬 용기있는 결단들로서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제까지 전쟁억지의 핵심적 근간을 주한미군의 전술핵에 의존해 왔던 우리로서는 부시의 제안이 「불안한 충격」임도 부인 할 수 없을 것같다.
왜냐하면 북한의 핵사찰 수용과 핵무기 개발저지가 확실히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으로부터의 핵 철수방침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간의 예상을 뛰어넘어 지상핵 뿐만이 아니라 극동에서의 해상핵까지를 포함한 것이어서 지상핵 철수후의 억지력으로서의 핵우산 보장마저 확실치가 않다.
부시선언이 있기 전까지의 상황에서 보면 한미양국이 주한미군핵의 존재에 관해 NCND 곧 「확인도 부인도 아니」하면서 북의 핵사찰만을 강요하는데에는 타당성과 함께 약점도 있었다.
왜냐하면 한미양국의 주장에는 핵확산금지에 관한 국제적 노력의 모순성이 그대로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곧 핵보유국이 핵증강이나 배치확산이라는 핵의 「수직적 확산」은 방치한채 비핵보유국의 새로이 핵을 개발하려는 「수평적 확산」만을 저지하려는 것은 핵불평등의 구조화이고 강대국 이기주의라는 비판이 국제적으로 상존해 왔다. 이점이 바로 이라크 등에 핵무기 기술과 물자를 판매·공급하고 있는 미국 등 서방국가의 이른바 「대량살륙의 세일즈맨」의 존재와 더불어 핵확산 방지노력에서 도덕적 불완전성과 현실적 제약으로 작용해왔던 것이다. 북한이 이같은 문제점을 나름대로 십분 활용해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때문에 종래에 결정적 대북 억지력으로 작용해 왔던 주한미군의 전술핵이,최근 북한의 핵무기 개발가능성이 문제가 되면서부터 한미양국에게 「양날의 칼」이 되어 버리고 맡았던 것이다. 계속 두자니 북의 핵개발을 저지할 명분이 약화되고,빼자니 억지력이 사라지는 딜레마에 봉착한 것이었다.
○제기된 새 과제
그런데 부시의 선언으로 새로운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종래의 NCND가 명분에서 문제점을 남기고 억지력 확보의 실익을 보장한 것이었다면 부시선언은 명분을 얻고 억지력 확보의 실익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시선언에 따른 한미양국의 최대과제는 북의 핵무기 개발을 방지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연형묵 북한총리의 유엔연설에서도 재삼 확인되었듯이 북한은 당장은 핵사찰에 응할 것 같지 않다. 그들은 남한으로부터 미군핵의 「철수완료」를 사찰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것도 철수가 완료되면 사찰에 응하겠다는 명확한 태도가 아니라 「그때가 되면 길이 열릴 것이다」라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알려진 바와같이 북한의 핵개발에는 이를 남한의 미군 핵철수와 연계시키겠다는 정치·군사적 목적외에 통상무기 경쟁에서의 상대적 열세화를 핵무기로 보완하겠다는 경제·군사적 목적이 깔려있다. 이 점을 감안하면 주한 미군핵이 철수된다 하더라도 북한이 쉽사리 핵개발을 포기할지 의문이다. 북한이 미국에게 지상핵의 철수뿐만 아니라,핵공격을 않겠다는 보장과 함께 비핵지대화 등의 조건을 계속 내비치면서 지연책을 쓰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의구심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다.
○단계적 핵정책
이젠 우리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할 확실한 보장과 카드를 필요로 하게 됐다고 본다.
이러한 보장을 위해 필자는 한미간에 주한 미군핵의 철수절차와 시간계획을 북의 핵사찰과 연계시켜 다음과 같은 핵우산의 단계적 제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주한미군 지상핵의 철수를 실시해 가면서 그 완료 이전에 북으로 하여금 핵사찰을 수용하도록 국제적 압력을 가하고,둘째는 여의치않아 다음 단계의 「선제적 양보」를 하더라도 그것은 지상핵의 철수에만 머물고 이 단계에서도 북의 사찰수용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공군핵이나 전략핵에 의한 핵우산을 억지력과 정치적 카드로 당분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국제적 강제사찰을 포함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북의 핵사찰이 실현되고 핵무기 개발이 방지된다면,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미국의 핵우산을 통한 억지력만을 고집하는 것은 현실적이 되지 못할것 같다.
왜냐하면 이는 세계사의 추세에도 부합될지 의문이며,무엇보다도 남북관계에 결정적 걸림돌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한은 핵제거후의 「공백」을 종래와 같은 소모적 군비증강으로 메우려 할게 아니라 신뢰구축과 평화협정을 이룩하고 이 분위기가 군비통제 및 군축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할것이다.
이 길만이 부시선언의 신선함 속에 수반된 불안을 씻고 핵철수와 통일을 연계시키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오는 11월의 한미연례안보협의회 대책과 함께 장기적 안목에서의 군비통제안 마련이 시급히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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