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안받는 「주력업체」 악용/현대 은행돈 끌어다가 신문사 설립/“업종전문화 유도” 당초 취지 빗나가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 일가에 대한 국세청의 주식이동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상속·증여세제 및 여신관리 제도 등 현행 제도들이 주식위장분산,사전상속 등 재벌그룹의 갖가지 교묘한 탈법행위를 막기에는 너무나 허점이 많다는 사실이 크게 부각되고 있어 보완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은행의 재벌에 대한 여신관리 규정은 재벌의 은행 대출을 규제함으로써,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시키기 위해 마련될 것이지만 이번 현대사태에서 드러났듯이 현행 여신관리 규정은 경제력 집중을 제어하기는 커녕 오히려 재벌에 대한 편중여신을 심화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특히 재벌그룹별 업종 전문화를 유도하기위해 지난 6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주력업체 제도」는 전문화와는 거리가 먼 문어발 확장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확인됐으므로 차제에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현대 사태에 나타난 여신관리 규정상의 허점은 ▲재벌의 주력업체 제도악용 ▲유명무실한 자구노력 의무조항 ▲그나마 제도 자체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점 등 세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8월 정 회장 등이 대주주가 돼 자본금 3억원짜리 현대문화 신문을 설립했다.
현대신문은 사무실 마련,기자재 확보 등 경영자금이 필요해지자 모두 3차례의 증자를 실시,9월말 현재 자본금을 96억원으로 늘렸다.
증자는 ▲90년 12월 9억원 ▲91년 2월 36억원 ▲91년 4월 48억원 등으로 이뤄져 현재 정 명예회장 등 특수관계인 개인 5명이 51%,현대자동차·현대정공·대한알미늄 등 3개 계열법인이 49%의 지분을 각각 나눠갖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것은 12.5%의 지분율을 갖고 있는 현대자동차. 현대차는 현대그룹의 3개 주력업체의 하나로 정부로부터 세계 일류기업이 되라는 뜻에서 은행대출을 마음대로 써도 좋다는 특혜성 지원을 받고 있다. 이른바 주력업체 제도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엉뚱하게도 일류 자동차 만들기보다 신문사 세우는데 더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바꿔 말하면 현대는 자기 돈 한푼 안들이고 여신규제를 받지않는 주력업체의 은행대출금을 이용,새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자구노력 의무조항이 명목상의 조항일뿐 실제로는 재벌에 별 부담조차 주지못하는 「이빠진 칼」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현대는 문화신문과 관련,총 50억원 정도의 자구노력을 해야하는데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은 『지금까지는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고 밝혔다. 즉 현대는 현대신문 관련 자구노력 50억원 정도를 이행하고도 9월말 현재 5백5억원의 자구노력 잔액을 기록하고 있어 전혀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자구노력은 출자한 3개기업(자동차 등)에 대해 개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게 당연한데 현행 제도는 그룹전체로 잔액과 이행 액수가 맞기만 하면 된다. 또 시가와는 상관이 없다. 10년전에 이행한 자구노력(잔액)도 인정받을 수 있게돼 있다.
현대는 이같은 제도상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큰 부담없이 기존업종과 관련도 없는 새로운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허점투성이인 여신관리 규정이 그나마 잘 시행되지도 않는다는데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현대신문 창립 당시의 재무장관과 주거래은행장은 현대의 언론업 진출 자체를 몰랐다고 밝혔었다. 바꿔 말하면 신문설립 신청사실을 알았다면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지양하고 재벌의 전문화를 지향」하는 여신관리 규정 본래의 취지에 따라 인가가 나서는 안된다는 설명으로 해석된다. 즉 재벌이 수출에 별도움을 주지도 않고 제조업 경쟁력과도 별 연관이 없는 신문사를 설립하려는 자체가 여신관리 규정 위반이나 당시엔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통한 경제력 집중 등을 막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제도적 견제장치의 하나인 여신관리 규정이 이처럼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한 현대에서 문제되고 있는 재벌들의 일반적인 병폐가 시정되기는 어려운 일이다.<이백규기자>이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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