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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소비시대/이병일 편집부국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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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소비시대/이병일 편집부국장(메아리)

입력
1991.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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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을 지은 카를·마르크스는 과소비를 넘어 「낭비도사」였다. 경제원칙에 대해 역사상 커다란 획을 그은 저서를 남긴 그였지만 사생활만은 경제원칙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변호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18세의 학생인 아들이 베를린 시의회의원의 연봉에 맞먹는 돈을 1년용 돈으로 써대자 여러번 타일렀으나 그의 과소비벽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1849년 부인·딸과 함께 런던으로 망명한 후에도 그의 소비벽을 바로 잡지못했다. 알몸밖에 없는 빈털터리이면서도 생활태도는 그대로였다. 친구인 엥겔스가 도와주고,거액의 상속을 받았음에도,얼마 지나지 않아 전당포를 찾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돈만 생기면 새집을 사려하고 가구는 물론 주방기구까지 전부 바꾸곤 했다. 소비는 생산을 자극한다는 생각에서 그러했는지는 몰라도 그 자신조차도 『왜 나한테는 돈만 들어오면 금방 사라져가는지 모르겠다』고 스스로 균형감각없는 안타까움을 엥겔스에게 고백한 일도 있다.

이처럼 낭비벽이 심한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썼다는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그가 요즘 우리사회의 과소비 실태를 본다면 어떠한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이탈리아 대리석으로 바닥과 벽을 장식한 집에,한벌에 1천만원 이상 하는 외제옷을 입고 수천만원이나 하는 응접세트에 앉아 갖은 호사를 다하고,그것도 부족해 1억∼2억원이나 하는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우리사회 일부의 극에 달한 과소비에 그도 「과소비도사」란 자리를 양보할지도 모른다.

마르크스까지도 놀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우리의 과소비 실태에 대한 정보를 들으면 계급 소비사회가 됐다는 생각과 함께 균형감각이 무너진다.

세끼의 밥조차 해결하지 못했던 보릿고개 시절에는 소비란 개념조차 희미했다. 경제발전과 함께 빵문제가 해결되고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가전제품 구입에 열을 올리던 대중 소비시대를 맞았다. 국산품만의 시대라 선택의 폭은 좁았지만 고생끝에 모처럼 맞은 대중 소비시대를 전반적인 균형감각 속에서 보냈다. 가전제품을 갖춰놓은 집안을 둘러보며 스스로를 중류라고 만족도 했다. 최고 80%가 스스로를 중류하고 밝힌 여론조사도 있었다.

그것도 순간이었다. 80년대 후반의 5,6공화국의 교대,짧은 기간의 국제수지 흑자,올림픽과 함께 경제정책의 실패로 부동산 값이 치솟음에 따라 사회 모든 면에서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 졸부가 설치는 등 소득의 격차가 눈에 띄게 나타남에 따라 소비에도 계급이 생겨났다.

이것이 과소비를 몰고왔다. 대중 소비시대를 거치면서 기초적인 구매욕구를 충족한 소비자들의 선택적인 구매욕구가 불타오르고 여기에 일부계층의 과시욕이 맞물려 눈에 거슬리는 과소비현상을 우리사회에 안겨주게 된것이다. 주택개조·패션·레저·외식·인테리어 산업의 발달은 바로 계급 소비시대의 특징이라 할수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저소득층이 그래도 끝까지 버텼던 분야다. 그러나 이마저 과외해금과 부동산투기 시대가 몰고온 소득격차로 중류층까지 좌절감을 맛보고 있다. 특수학군이 생기고 몇백만원대의 과외가 보통인 요즘이다. 정말 모두가 균형감각을 잃고 들떠 버렸다.

마르크스는 과소비하면서도 자본론이라도 썼지만 우리의 과소비는 무얼 낳을지 걱정이다. 균형감각을 찾아 모두가 어디에 어떻게 서 있는지 살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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