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또 그렇게 끝이 난다. 6공들며 부활된 국정감사가 벌써 네번째인데,감사기간중 내내 따라 다닌 형용사는 여전한 저질·부실이었고,끝내는 장내 단독감사와 장외 허탕감사로,이른바 거여와 강야가 따로 노는 추태마저 연출했다. 13대 국회는 그 「졸업시험」에서 낙제과목 하나를 추가한 꼴이다.헌법 교과서를 빌지 않더라도,국회의원 전원이,일정한 기간을 정해서,국정 전반을 일제 감사하는 국정감사는 다른 나라 헌법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자칫 잘못 운영하면,다른 국가기관의 기능을 정지시킬 우려도 없지않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국정감사의 의의를 깎아 내릴 수 없다. 국정감사는 한해 국정에 대한 총평과 같아서,정권에 대한 상징적인 견제효과가 크다. 이 과정을 통하여,국회는 예산심의와 입법활동을 위한 자료를 현장 확인하며,그 덕에 국민들은 국정의 실태를 알게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제헌헌법이래 줄곧 있어 온 이 제도를 72년 유신때 폐지한 것이나,민주화를 앞세운 6공헌법이 여·야 이의없이 이를 부활시킨 것이,다 국정감사가 갖는 의미가 심각함을 말해준다.
그러나 15년의 공백을 지나서 겨우 되찾은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4년째 운영해 본 실속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정치풍토가 아직은 그러려니 하고,국회의원의 자질도 우리가 뽑은 사람들이니 그들만 나무랄수는 없을지 모르겠으나,국민을 대신해서 국정을 감사한다는 진지한 자세나 성실한 준비는 좀처럼 엿보이지 않고,오다 가다 드러내기는 이른바 당략,파당적 충성심에 한건주의,3권위에 군림하는 듯한 오만함이며,그 뒤끝에 남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 모양은 요란한 빈 수레에 가깝다.
모처럼의 국정감사가 이 지경인 까닭은,그 탓을 여·야에 고루 돌릴 수 밖에 없다. 한편에서는 행정의 위법·비리를 적발·폭로·추궁하여 정권에 상처내는 일에 치중하고,다른 한편은 다른 한편대로,정부의 바람막이만이 자기 소임인 줄로 알아서,이른바 「감사갈등」만을 복잡하게 증폭시킨 것이다. 그 자초지종은 정쟁이지 감사가 아니다.
국정 1년을 총평하는 감사의 본령은 비리를 둘러싼 공방이 아니라,정책을 평가하고,그 집행의 능률성과 비용의 적정성을 가늠하여,시정할 것은 시정케 하고,그 성과를 예산심의와 입법과정에 환류시키는데 있다. 이것이 여·야가 할일이라면,아옹다옹 다툴것도 없다. 다툴것이 있다면 정책 그 자체가 있을 뿐이다.
사리는 이렇게 뻔하나,일이 그렇게 풀린다해도 정작의 문제는 따로 있다. 전문성과 정보의 부족이다. 아무리 10여년에 걸친 행정자료를 바리로 실어 온다고 해도 전문적인 분석 능력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단발성의 내부고발이나 제보,신문보도나 인용하는 것으로 행정의 장막을 꿰뚫을 수는 없다. 이것이 국정감사가 헛도는 가장 큰 까닭이다. 전문성도 없이,정보도 없이,고도의 전문가 집단을 감사한다는 것이 애시당초 무리라는 얘기도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할것인가. 국회의 국정감사권의 소중한 것이라면,그 권능을 제대로 기능하게 하는 방도를 찾는 도리밖에 없다.
그 첫째는 국회의 권능으로 공개행정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외국에 예가 많은 정보공개법,선샤인법의 제정이다.
다음은 국회의 조사·감사기능을 높이는 것이다. 지금의 전문위원 제도를 대폭 강화하고,법관자격 수준의 조사위원을 따로 두며,전문가를 감사 보조자로 수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트는 것이다. 민간인으로 조사위원회·고정처리 위원회를 구성할수도 있다. 국회에 조사기구를 두어 고도의 전문가 집단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들을 활용해서 국회의 조사활동을 상시화할 필요가 있다. 국정조사권 발동요건을 지금의 재적의원 3분의 1에서 4분의 1쯤으로 완화하면 되는 일이다.
국회가 정부의 감사기관감사원과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한가지 방도가 된다. 감사원 활동을 국회의 요구와 조화시킬 수가 있고,감사원 자료를 제공 받아 제대로 분석할 수만 있어도,국회의 조사·감사기능이 비약할 것은 틀림이 없다.
끝으로,가장 근본적인 것은,대통령 소속으로 되어있는 감사원을 아예 국회로 옮기는 것이다. 감사원이 비록 그 직무는 독립적이고,원장 임명은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되어 있으나,특히 권력형 비리 등에 있어서는 그 독립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감사원의 위상을 일본의 회계검사원처럼 행정부로부터 완전 독립시키는 방안이 있을 수 있으나,국회의 여러 권능에 비추어서는,감사기구를 국회소속으로 하는 것이 민주화의 요청이나 감사 본래의 기능에 보다 더 합치된다고 할 수가 있다. 미국의회의 심계국(GAO=General Accounting office)이 그 좋은 보기다. 이쯤되면 국정감사 자체가 없어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국회의 조사·감사권능을 높일 방도는 이처럼 얼마든지 꼽아 볼 수가 있지만,그것도 결국은 「성숙한 국회」 「성숙한 정치」를 전제로 하는 것임에 생각이 미친다. 아니할 말로 국정조사권이 정쟁의 빌미로 되고,감사원이 당리의 간섭을 받게된다면,어찌 될것인가. 이점에 대한 정치의 자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
제13대 국회를 마감할 즈음이라,다음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선거법 협상에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13대 국정감사를 결산하면서,국정감사권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방도의 궁리도 있어 마땅할 줄로 안다. 특히 제14대 국회에서 다시 국정감사에 나서기로 기약하는 선량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한다.<상임고문·논설위원>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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