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잡지가 부쩍 늘었다. 여간 정성과 품을 들이지 않고서는 대충 훑어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글의 분량이 많다. 광고와 제목은 그럴듯한데 막상 읽어 본 내용은 그만 못하다는 실망도 맛보게 된다. 그래서 모처럼 사온 잡지를 뒤적이다 마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그렇게 발행일로부터 달포나 지난 묵은 잡지를 뒤적이다가,좋은 글 하나를 발견했다. 광고에서도 못보고,목차에도 돋보이게 실리지 않았던 글이 우연히 눈에 띈 것이다. 「어떤 이공대에 지원할 것인가」(월간조선 9월호)가 그 제목이다. 「좋은 대학 좋은 학과를 뽑는 요령과 기초자료」라는 부제가 글의 내용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필자는 「한국과학재단 기획조사부」로만 나와있다.
이 글을 좋다고 하는 까닭의 첫째는 이런 글을 처음 읽었다는 것이고,그것이 이른바 대입진로 교육,나아가 대학교육 전반에 대해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생각한데 있다. 그 부제에 좋은 대학,좋은 학과를 「뽑는다」고 한 발상도 나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들렸다. 흔히들 대입이란 대학이 신입생을 뽑는다고만 생각하지만,사실은 학생과 학부형이 좋은 대학 좋은 학과를 뽑는 과정이 먼저 있음과,그것이 한 젊은이의 앞날을 생각해서는 대학측의 학생뽑기보다 더 중요한 과정일 수가 있음을 그 부제가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우리 대입의 제도나 관행,대입지도의 결함중 하나가,바로 그 같은 좋은 대학 좋은 학과 뽑기의 관점을 빠뜨린데 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른바 「점수가 적성」이라는 당락우선,일류대 지향의 폐단이다.
그러나 좋은 대학,좋은 학과 뽑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 까닭중의 가장 큰 것은 정보부족이다. 「대학이 아니라 학과를 먼저 선택해야 한다」는 충고는 일리가 있는 것이지만,그럴 경우에도 학생이나 학부형이 얻을 수 있는 정보란,고작 상식으로 알고 있는 대학의 유명도와,예상 커틀라인으로 나타나는 특정학과 합격의 난이도,그리고 대입마감 날 눈치로 때려잡는 경쟁률 밖에 없다. 그 결과가 대입창구 앞의 우왕좌왕인 것이다.
이런 정보부족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대학의 「대외비」가 너무 많은데 연유하다. 다른나라 같으면,책방에서 사온 책 한권으로 속속들이 알 수 있는 대입정보가 우리에게는 모두 「대외비」인 것이다. 이렇게 대학의 「대외비」가 많은 까닭은,많은 대학의 실속이 드러내기 부끄럽고,다른 대학과 비교가 될까 두려운 수준이라는데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학 스스로 그런 정보부족을 해소해 주기를 기대하기는 적어도 당분간은 어렵다.
그러면,이 정보 부족을 어떻게 할것인가. 그 한 해답을 앞의 「어떤 이공대에 지원할 것인가」에서 읽을수가 있다. 대학의 속사정을 알만한 기관에서 좋은 대학·좋은 학과 뽑기의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 글에서 필자는 이공대 진학의 고려 사항으로 소질,학문의 특성과 국제적인 동향,국가적인 수요(나라의 중점육성 분야와 인력수급 계획 등)을 먼저 꼽고,좋은 대학의 3요소인 ①교수 ②연구시설 ③우수한 학생을 표를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것이 교수의 수준과 연구업적이다. 그 지표로서,과학재단이 3단계 평가를 거쳐 시행하고 있는 연구지원 실적을 대학별·연도별 표로 제시한 것이 눈을 끈다. 6단계의 평가를 거쳐 선정한 우수 연구센터 일람표와 5만달러 이상 연구기기의 대학별 보유현황은 대학별로 연구시설의 격차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분석의 결론은 「일류대학은 연구기능이 일류인 대학」이라는데 귀착된다. 그런 안목으로 여러 표를 살펴보면,명문대라고 해서,반드시 그 대학의 이공학과가 다 우수한 것은 아니며,오히려 지방대학이 우수할 수도 있다는 짐작이 간다. 필자의 지적대로 하면,각 대학의 자연계 학과중 50%이상을 우수하다고 평가받을만한 대학은 아무리 평가해도 셋을 넘지 못한다. 「대학이 아니라 학과를 선택하라」는 충고는 그래서 설득력을 지닌다.
이 분석은 특정대학 특정학과를 거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이것만을 가지고 특정대학 특정학과 선택의 참고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글이 제시한 지표에,전국의 이공계 학과를 망라한 각각의 현황을 곁들인다면 진학정보로선 완벽한 것이 될수가 있다.
그런데 이에 필요한 현황들은 각 전문분야의 「대학교수,그것도 열심히 연구하는 교수」라야 알수가 있고,「교수들의 연구계획서를 받아 평가·선발하여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관 정도」라야 총체적인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이 필자의 지적이다. 완벽한 진학정보를 누구가,어떻게 마련해야 할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 점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최근 결성된 전국 공과대학장 협의회에서 대학의 우수성 정도를 평가해서 대학발전의 계기로 삼자는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학이 발전하자면 그런 자체평가가 꼭 있어야 하고,그런 평가에 기초한 경쟁이 있어야 한다. 오는 10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 대학의 평가인정 제도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10년 또는 5년에 한번 시행하는 평가인정 제도는 진학정보와는 별개의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학정보를 위한 평가와 그 결과의 공개도 있음직하다고 보는 것이다. 각 분야의 학과현황을 잘아는 교수와 기관 예컨대 여러 학문분야 학회들이 나서서 관련학과의 현황을 조사해 발표한다면,대입제도의 건전한 정착과 고3 진로지도에 크게 도움될 것이 틀림없다. 교육부로서도 대입제도만을 주무르고 있을 것이 아니라,진로교육을 위한 그런 방도도 겸토해볼만 하지 않을까 한다.<상임고문·논설위원>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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