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의식이 구미의 선진고도산업사회 근로자들을 쫓고 있다. 사회가 집단취락의 농경사회에서 도시중심의 산업사회로 발전하고 또한 다양화함에 따라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자연적인 추세다. 또한 소득이 상대적으로 증대함에 따라 여가선호의 성향이 나타나는 것도 일반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서 달려가고 있는 고도선진사회의 근로자들의 이러한 특징들이 아직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기도 전에 벌써 우리사회에 표출되고 있다는데 있다.24일 발표된 대한상의의 한국기업 근로자들의 의식구조 조사결과는 우리의 의표를 찌르고 있다. 이번 조사는 전국 6백44개 업체의 근로자 4천9백49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이중 70.7%가 『수입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산업대신 개인적인 여가를 갖겠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6공 이후 노조운동의 개방과 88년 올림픽 이후의 과소비 풍조가 맞물려지면서 섬유,전자,신발 등 전업종에 걸쳐 만연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근로자들의 잔업 불선호풍조를 확인해주는 것이다. 한국을 후진농업국에서 신흥공업국으로 부상시킨 소위 「한강의 기적」 신화를 창출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근로자들의 「일벌레」 근성이 증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근로자,기업,정부가 3위1체가 되어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에 피와 땀과 눈물을 다했다. 근로자들은 수주한 제품의 납기를 지키기 위해 앞다투어 잔업을 자청했다. 기업과 자신을 일체화시켰다.
미 섬유노조 뉴욕지부 회원들은 한국의 값싼 수입의류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주 54시간 이상씩 일하는 한국근로자들의 「일벌레」 정신을 규탄하는 데모까지 벌이곤 했다. 우리근로자들의 유별났던 그 근로정신은 이제는 이미 과거의 역사가 돼가고 있다. 그 원인에는 부의 편중,사회정의의 붕괴,투기 등 불로소득의 급등,아파트 주택값의 폭등,실현가능한 기대의 상실 등등 여러가지 요인들이 지적될 수 있다.
우리근로자들의 법정근로시간은 지난 89년 3월 주당 48시간에서 46시간으로 단축됐고 지난해 10월1일부터는 상시근로자 3백인 이상 대기업 및 금융·보험업은 다시 44시간으로 추가 단축됐다. 미국,프랑스의 주당 40시간보다는 많지만 서독·이태리의 주당 48시간이나 경쟁국인 홍콩·대만의 48시간보다는 적은 것이다. 경제대국 일본도 주 48시간 근로의 비율이 아직도 39%나 된다. 우리근로자들이 너무나 빨리 여가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회사보다 개인을 우선시키는 것 등은 좋다.
그러나 아직 일보다 여가를 선호할 때는 아닌것 같다. 잔업거부에 이제는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기피하는 3D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노동시장은 「풍요속의 빈곤」을 겪고 있다. 인력난과 고임금은 우리경제의 국제경쟁력을 급강하시키고 있다. 우리는 일벌레정신의 실종을 한탄만하고 있어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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