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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날의 자성/박완서 소설가(목요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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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날의 자성/박완서 소설가(목요진단)

입력
1991.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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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마다 1면 머리기사로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한 사실을 보도한 날,공교롭게도 사회면은 한결같이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숨진 서울대 대학원생의 죽음을 크게 다루고 있었다. 만약 이런 사건이 며칠 간격을 두고 일어났더라면 뒤에 일어난 사건이 앞서 일어난 사건을 지우는 우리의 습관성 망각증세에나 기여했으련만,이번 일들은 보도의 동시성때문인지 느닷없이 우리 사회가 그 표현을 동시에 드러내 보인 것처럼 황당하고 무안했고,그런 느낌이 쉬 가셔질 것 같지가 않았다. 숨진 한국원씨는 그날 경찰에 화염병을 던진 격렬한 시위대와 무관했고,시위경력도 없었다니 유족들의 원통하고 황당한 심정은 오죽할까? 동시대인으로 그의 억울한 젊은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남의 불행에 대한 동정 이상이 되지못할 줄아나,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황당한 느낌은 유족과 조금도 다름이 없고,도무지 위로받을 방법이 없다.추석연휴가 시작되는 날,조간신문에 실린 두장의 사진도 충격적이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장기려박사가 북에 두고 온 부인의 사진이 그것인데 한장은 남편과 헤어지기 전 30대의 사진이고 또 한장은 지난 6월 인편으로 보내왔다는 79세의 사진이다. 30대의 사진은 당연히 젊고 아름답고 80에 임박해서는 당연히 늙어 쪼글쪼글하다. 세월이란 그런 것이다. 누구의 사진첩에나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세월의 무상함이건만,유독 그 두장의 사진사이에 세월이 가슴 아팠던 것은,순전히 민족분단에 의한,민족분단의 세월과 일치하는,길고 긴 외로움과 참아냄의 흔적때문이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숱한 사람들의 이런 고통을 얼마만큼 덜어줄지 아직은 미지수이나,우리가 근 반세기동안 온갖 설움과 고통을 받으면서 버리지 않은 희망이 고작 그것은 아니었기에 정부가 만들어낸 축제분위기에 선뜻 동의가 되지 않을뿐 아니라 황당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한 뛰어난 개인이 그 기나긴 고통을 어떻게 참아내고 살아냈나하는 이야기는 아름다운뿐 아니라 이런 황당스러움까지도 위로해주는 힘이 있다. 그(장기려박사)는 그가 그렇게 긴 세월을 재혼도 안하고 홀로 사랑의 인술을 널리 실천하며 살수 있었던 비결을,신앙의 힘도 있었지만,마음속 깊이 간직한 가족에 대한 간절한 사랑때문이었노라고 고백한다. 내가 불쌍한 이웃을 위해 일하는만큼 북에 남겨두고온 아내와 아이들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 되리라는 믿음과 아내가 생존해 자식들이 다 훌륭하게 성장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그 믿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감사했다는 그의 담담한 진술은,사랑의 힘에 대한 감동적인 증언이다. 미움보다는 사랑이 강하다는 건 오랫동안 우리 입술에 붙어다녀 하나도 새로울게 없는 흔해빠진 말이다. 그러나 그걸 실천하기는 얼마나 힘들며,실천해서 참다운 힘을 얻었을때 얼마나 위대해지는지,그가 보여준 바는 충격이요 또한 희망이었다. 그는 부인의 근래의 사진이 너무 말라 가슴 아프다고 했는데 나보기에는 부러울 정도로 아름다워보였고,그 또한 그의 사랑의 힘일터라는 위로를 그에게 보내고 싶다.

추석날 밤,자리에 들려다말고 뭐 하나 빠뜨린게 있는 것 같아 베란다로 나갔다. 달 구경은 하고 추석을 넘겨야할 것 같아서 였다. 하늘에 달이 있다는걸 의식해보지 않은지 얼마만인지 잘생각나지 않았다. 달이 인간의 밤길을 밝혀준다는 필요성에서 멀어지고부터 우리는 달을 잊고 살아왔다. 그러나 필요성에서 제외되기가 무섭게 사라지는 상품과는 달리 달은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의 좁은 하늘에서 여전히 휘영청했다. 나는 베란다에서 바라다본 추석달보다는 주차장이 더 신기했다. 좀전에 본 뉴스에 의하면 추석에 서울을 빠져나간 차들이 몇십만대라고 하길래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을줄 알았는데 여전히 꽉 차있었기 때문이다. 무수한 창문도 불꺼친 창 없이 모두 모두 환했다. 그 많던 먹거리는 누가 다먹었을까? 추석전에 시장과 슈퍼마켓과 백화점에 지천으로 넘치던 먹을 것들을 떠올리며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한가위엔 가난한 집 며느리 뱃덧이 난다』라는 옛말도 있으니 모든 사람이 약비나게 먹었겠지. 그러나 이상도 하지. 지금처럼 먹거리가 흔하지 않았을 그 옛날에 어떻게 그런 말이 생겨났을까.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한때나마 서로 나누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나처럼 내 식구 내 친척하고 밖에는 송편 하나 나눈 적이 없으면 그걸 믿고 마음 편해질 자격 또한 없지 않을까. 그 배부른 밤,그 나마의 자성이라도 할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장기려박사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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