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사학의 재정난 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그동안 간간이 거론되어 왔던 기부금 입학제도를 93년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세부시행 방안의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엄청나게 큰 정치적·사회적·도의적 의미를 지니는 교육 정책 현안이 그렇게 쉽게 결정된다는데 당혹감을 금할 수 없으며 집권당인 민자당까지도 그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표명한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라 본다.우리의 대학들이 심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지금의 재정 상태로는 대학이 오늘날 같이 국제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대에 대학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것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온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라가 가난하고 구민의 교육열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학교로 좀 더 많은 돈이 흘러들어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안되어 있기 때문이라는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비싼 값의 불법 괴외가 극성을 부리는 사회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교육 구매력에 비해 학교를 통해 공급되는 교육의 양과 질은 엄청나게 떨어진다. 결국 정책만 잘 강구되면 학교로 끌어 들여질 수 있는 돈은 얼마든지 있다는 이야기며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돈을 끌어 들이는가 하는데 있을 뿐이다.
국민 모두가 부담하느 교육세 또는 일반세에서 정부가 교육을,특히 사립대학들을 지원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지금까지의 체험에서 알고 있다. 등록금을 올리자는데 대해서는 학생들이 폭력시위로서 맞섰다. 그래서 사면초가가된 사학들이 내놓고 문교부가 받아들이기로 한 궁여지책이 정원외의 제한된 범위내에서 기부금 입합제를 허용한다는 발상인듯 하다.
소수의 자리를 양보하여 대학의 재정을 크게 확충하면 그 혜택이 다수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실용주의적 정당화 이론이 그러한 발상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사실 많은 사학들이 그런 생각으로 비밀리에 기부금 입학을 허용해왔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공개적으로 제도화 한다는것은 편익을 위해 원칙을 저버리는 졸속행정의 표본으로서 그것은 결코 허용될수도 성공할 수도 없는 대안이다. 첫째 극히 소수의 돈있는 사람들에게만 제도적으로 특혜가 인정되는 그런 제도란 민주사회에 있을 수 없는 위헌적 발상이다. 미국과 서구의 대학들이 기부금 입학제도를 활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근래 우리 대학의 행정 책임자들 사이에 널리 확산되고 있으며 실제로 우리 재벌들의 자녀들을 유치하기 위해 미국의 대학 총장들이 우리나라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모습이 눈에 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와 전혀 다른 원칙으로 융통성 있게 운영되는 그들의 학생 선발 방식 덕분에 가능한 것이지 명문 대학들이 입학의 기회를 돈과 맞바꾸는 식의 무원칙하고 비교육적인 제도가 실시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둘째 정원외 기부금 입학제도란 현실적으로 운영이 불가능할 것이다. 한 아이의 한학년 과외 비용으로 몇천만원을 쓰는 사람들도 적지않은 지금의 세태에서 기부금 입학제도가 공개적으로 운영될때 기여금의 액수에 따라 자리가 메워지는 공개 입찰 방식을 택할 것인가,아니면 성적과 돈을 같이 따지는 어떤 묘안이라도 나올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빈부격차의 갈등이 심화되고 대학의 한자리를 얻기 위해 입시생만 아니라 온 가족이 입시 회오리 바람속으로 자진해서 말려드는 사회에서 진학의 기회마저 돈으로 살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자아내는 사회적 파급효과는 어떨것이며 큰 돈의 힘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동료들 사이에서 위회감을 느끼지 않고 견뎌낼것인가? 얼마만큼의 기부금을 받았을때 그 혜택이 학교 전체에 미친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인가?
사회정의나 교육기회의 공정성이라는 큰 원칙에 어긋나는 기부금 입학제도가 아니고도 대학의 재정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높은 교육수요과 구매력에 걸맞게 확충시키는 보다 나은 방법은 여러가지 있다. 첫째는 국공립 학교와 사립학교를 명실 상부하게 구분하여 사립학교들에 필요한 만큼의 등록금을 받을 수 있는 자율권을 보장하는 길이다. 등록금을 인상할때 학생들의 저항이 예상되지만 그것이야 말로 교육부와 학교 당국이 끈질긴 국민계몽과 설득과정을 통해 극복해 나가야 할 문제이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생활 수준에 비해 우리의 대학등록금은 매우 싼것임을 교육 선진국 사립대학교의 수업료 및 학생당 교육단가와 우리의 사정을 비교해 보면 곧 알수 있다.
등록금의 점차적 인상과 함께 장학제도를 의무화해서 학비 뿐 아니라 생활비까지도 포괄하는 장학금을 늘리는 방침을 추진하며 국립대학의 등록금을 낮은 수준에서 유지한다면 우수하지만 돈이 없어서 대학에 진학 못하는 학생들은 없어질 것이고 등록금 인상에 대한 반대의 명분도 사라질 것이다. 장학제도의 강화를 수반한 등록금 인상은 돈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실질적으로 자기자식뿐 아니라 다른 학생의 등록금까지도 일부 부담하면서 대학을 지원하게끔 하는 간접적인 사회분배의 효과를 가지는 반면에 등록금 인상에 대한 무조건 반대는 결국 대학에서 빈곤의 평등을 영속화 시키는 결과 밖에 낳지 못한다는 것을 대학생들 스스로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사학의 등록금 자율화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하는것이 교육기관에 대한 기부를 장려하도록 세제를 개편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개인이 모교에 기부금을 낼 경우 그가 소득세 공제혜택을 받음은 물론 그가 다니는 기업체도 그가 낸 액수에 상응하는 돈을 같은 학교에 기부하고 세금공제 혜택을 받게되므로 학교는 실제로 두배의 수익을 올리게 된다.
기부금에 대한 세금공제 혜택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 해서 우리 정부는 그것을 허용하기를 꺼려왔지만 기부금의 운용내역을 공해한다는 조건아래서 면세헤택 대상의 범위를 점진적으로 넓혀 간다면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닐것이며 설사 다소 악용의 사례가 발생한다해도 그 제도의 순기능이 낳는 사회통합적 효과에 비해 그리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대학의 재정확충은 매우 시급한 문제이며 여러가지 대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되는 가운데 대책도 다양한 양식으로 마련될 수 있다.
그리고 자유경쟁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체제를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한 사립학교들의 재정관리에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고 가능한한 돈 많은 사람들이 되도록 많은 돈을 학교에 내도록 제도적으로 유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율적 선택과 공정한 경쟁의 원칙이 준수되는 가운데서 이루어져야지 아무리 적은 수의 「정원외적」 사례에서라도 돈으로 입학의 기회를 살 수 있게 하는 무원칙한 일이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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