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강조되어온 기술인가. 말로는 기술처럼 그처럼 많은 사람에 의해 그처럼 많은 분야에서 강조되어온 것도 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기술은 항상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우리경제의 국제경쟁력 약화요인으로 인건비·금리·운송비 등 생산비용의 증가,노동생산성의 저하,기술의 낙후,환율 등 여러가지 요소가 지적되고 있다.그러나 기술의 후진성이 가장 결정적인 불리다. 미국·일본·EC 등 선진국을 쫓아가는데도 기술이 장벽이다. 반면에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중국 등 후발개도국들의 추적을 따돌릴수 있는 무기도 기술이다. 쫓고 쫓기는 국제시장에서 우리경제가 살아남자면 기술향상 밖에 없다는 것에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더욱이 지금은 첨단과학,정보산업시대다. 컴퓨터,로봇,반도체,위성통신,항공·우주산업,생명공학,정밀화학 등 소위 하이테크산업은 경쟁이 치열,신제품의 수명이 크게 단축되고 따라서 자금수요도 크고 위험부담도 적지않다. 섬유,기계,신발,선박 등 전통산업들도 로봇화·컴퓨터화로 자동화의 비율이 높아지는 등 정밀·고도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은 이제는 정말 노동집약적 경영이 사양화하는 분기점에 와있다. 우리보다 몇발 앞서 고임금과 인력난을 겪은 일본은 전자같은 노동집약업종에서도 신제품개발,성력화(로봇화 등에 따른 인력감소),인건비가 저렴한 제3세계로의 진출 등으로 선두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우리 가전업계들은 시장이 일부만 개방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기업들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카셋플레이어,컬러TV,세탁기,VTR등 기본품목에서 소니,파나소니,산요,샤프 등 일본 브랜드에 밀리고 있다. 아직 개방되지 않고 있는 대형냉장고와 컬러TV,캠코더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내수뿐만 아니라 수출을 통해 상당한 경쟁력이 붙은 것으로 알려졌던 우리 가전업계가 안마당에서 강적 일본의 상륙에 휘청거리는 것은 한마디로 기술격차와 이에 따른 상표신뢰도의 열세다.
전자업계의 고전에서 보듯 국제경쟁력을 되찾거나 지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첫째도 기술이요 둘째도 기술이요 셋째도 기술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기업들의 기술향상노력의 실상은 어떠한가.
기업들이 말하는 것처럼 기술의 도입이나 개발투자가 효율적이지도 않고 크지도 않다. 24일 발표된 산업은행의 「기술도입 효화분석」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기술도입 행태가 얼마나 낭비적이고 비생산적인가를 밝혀주고 있다. 62년이후 90년까지의 기술도입건수는 6천9백44건으로 로열티지급액은 49억2천5백50만달러다. 이 가운데 개발된지 3년이내인 신기술은 불과 8%이고 74%가 5년 이상된 낡은 기술이다. 또한 국내에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기술이 있는데도 중복도입한 것이 55%다. 뿐만아니라 핵심기술보다는 당장 제품화되기 쉬운 단순가공기술이 주종이라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기술도입으로 생산된 제품의 68%가 내수용이라는 사실이다.
라이센스생산이라고해서 엄청나게 비싼가격을 물려 폭리를 취했거나 과소비를 조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기능도 적지않다. 한편 국내기업 연구개발(R&D)투자는 업종과 기업에 따라 큰 차이가 나타난다. 한신경제연구소가 지난 상반기 30대 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기전자(매출액 대비비율 4.03%),자동차 등 운수(1.56%),기계(1.5%),제약(1.14%) 등이 1%를 상회하는 정도. 삼성,대우,럭키금성,현대 등 재벌기업이 3%를 상회,선진국 수준이다. 나머지업종과 기업은 미미하다. 현상태에서는 기술종속을 벗어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기술입국」이 자명한 이상 획기적인 정책의 전환이 있어야겠다. 여기에는 발상과 의식의 변화가 전제돼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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