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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대학/유영종(아침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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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대학/유영종(아침조망)

입력
1991.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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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명절이면서 힘겹게 넘긴 한가위였다. 심기가 썩 편하지만은 않고 어느 한구석인가 울적하다. 추석 물가고 귀성 교통난이 엉켜 고와 난이 중첩되었으니 연휴 기분이 반감이 된거나 다름없다.보름달이 그림같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떠오른 추석 밤에,방송이 전한 뉴스가 그렇게 밝지가 않다. 기술개발의 부진과 낙후로 인한 경제의 고전이 심란하기만 하다. 수출에서 큰 몫을 차지한 가전제품이 해외와 국내시장에서 한꺼번에 밀리고 있다. 추락의 속도를 조절할 날개마저 잃은 형상이다. 제약기술은 하나의 독창도 없어 남의 등에 업혀 연명하는 꼴이라고 한다. 지금 닥친 기술난은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

능력 부족도 그렇지만 민심과 방심의 탓이 크다. 오늘의 난관을 일시 현상이라고 낙관할 털끝만한 근거가 있으면 천만 다행이다. 막연히 저력만 믿고 있다가 축적이 없으니 당황할 수 밖에 없다. 물가 국제수지 기술과 같은 경제적 난관은 가시적 현상이기 때문에 고통이 금방 피부에 와서 닿는다.

실은 보이지 않는 「징상」이 더 두렵다. 발등의 불이 아니라고 등한시하는 대학의 현실과 고통이다. 대학은 지금 이중고에 허덕인다. 연구환경이 열악하고 면학 분위기가 좀체 자리를 잡지 못한다. 그래서 대학의 사명과 기능이 흔들린다. 새로운 학문 새로운 지식의 개발이라는 본질에 충실할 형편이 아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이대로 버려두고 기술난 극복을 말로만 떠들어 대는것은 우스울 따름이다.

대학은 고급두뇌의 집단으로,우리나라에서도 연구인력 가운데 80% 가량이 여기에 몸을 담고 있다. 이들이 재능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얼마나 활용하느냐에 따라 오늘과 미래가 좌우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고급두뇌의 연구환경과 활동은 어느 수준인가. 학문과 연구에 대한 투자라면 아직도 생소하게 들리고 실제로 인색하다. 연구비를 특혜로 여기는 생각이 없지 않다. 나라 전체가 내는 연구비중 대학의 몫은 10% 미만. 이것을 쪼개어 정작 교수들에게 돌아가는 비율은 25% 정도에 머문다. 수혜 고수 1명에게 주어지는 금액은 대만과 비교해도 3분의 1 수준에 못미친다. 두뇌가 뛰어나고 재주가 비상하다 해도 앞지르기는 커녕 따라 잡기도 벅찬 실정이다. 게다가 이공계는 더 한심하다. 실험기구나 장비가 고물이 아니면 거의 없다시피한 형편이다. 책만 갖고 따라붙는 연구와 강의로 땜질하는 시대는 지나가도 한참 지나갔음을 의식조차 않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신분을 불안케하는 교권침해 사례가 재단과 학생들에 의해 자행되고 해마다 증가추세에 있다는 것이 한국교총이 낸 국정감사 자료에 나온다. 이런 판국에 연구환경의 강조가 헛소리이거나 뒷전에 밀리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면학 분위기는 어떤가. 운동권의 과격성이 불길을 잡히자,새학기들어 대학 스스로가 면학에 관심을 돌린것은 반가운 현상이며 결단이다. 어지러운 대학에서 공부하는 대학으로 돌아가자는 간절한 기원이 담겼다. 너무 오랫동안 대학은 면학과 거리가 멀었다. 학문 보다 현실이,고뇌보다 투쟁이 앞섰다. 공교육비를 능가하는 과외까지 해가며 합격만 되면 좋을줄 알았지 진짜 학문을 배우는 고역은 거의 외면하였다. 한 학기 16주인 수업일수를 어김없이 채운 대학과 강좌가 얼마쯤 되었을까 의문이다. 개강이다 종강이다 해서 빼먹고 데모다 축제로 휴강이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면학과 연구는 따로 따로가 아닐 것이다. 연구활동이 왕성하면 면학 분위기가 살아날 것이며,면학의열도가 높으면 역으로 연구를 자극하는것이 대학의 생명이다. 면학에 열중하는 제자가 많으면 스승은 신바람이 난다. 엄격한 명강의 앞에 놀고 먹는 제자는 고개를 내밀지 못한다.

우리 대학은 학문의 이전이라는 타성을 벗어나 학문의 개발에 주력하지 않으면 낙후의 속도가 더 빨라질까 염려된다. 그렇지 못하면 기술의 개발과 축적을 모른체 하고 기술 이전에 안주한 기업과 다를바 없다는 질책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대학도 국제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자생력을 갖춰 나가야 한다. 우물안 개구리 신세로 명문대 간판 자랑이나 하다 보면 거북이 저만치 앞서 간다. 앞으로의 세계는 경쟁에 뒤지면 끝장이다. 대학이라고 예외의 성벽을 쌓고 지낼수가 없게 되었다.

선진국에선 무역장벽 같은 「교육장벽」을 강화하려는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외국 유학생의 두뇌를 통한 첨단 지식의 유출을 제한하려는 심상찮은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꾸물대고 있으면 또한번 만시지탄에 젖어 무릎을 꼬집을 날이 온다.

지식과 기술은 저절로 솟아 나거나 계시처럼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초를 세우고 착실하게 쌓아 올라가는 길만이 유일한 왕도이다. 물가고와 교통난은 당장의 고난이지만 교육난·기술난은 미래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학문과 지식쯤은 빌려 오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은 버리고 창의력을 함양함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대학의 고뇌가 요구된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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