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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쉼의 조화/김창렬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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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쉼의 조화/김창렬칼럼(토요세평)

입력
1991.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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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가 열린다. 신문도 이틀을 쉰다. 신문은 연중무휴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온 구닥다리 기자에게는 48시간 신문없는 세상이란 것이 좀 당혹스럽다. 뉴스에 쫓긴다는 핑계로,미처 노는 법을 익히지 못한 탓이라고 할지,그래도 노는 날은 노는 날,역시 놀아서 좋다해야 할지­그런 생각이 든다.그래서 언론계에 큰 자취를 남김 천관우(1925∼91)의 다음 글귀에서 나는 신문기자적인 정서를 읽는다.

『이날이 추석이라 한다. 남이 추석이라 하니 나도 추석이라 해도 좋고… 세화년풍해서 이날을 즐겨도 좋고,거친 세파에 이 날만은 쉬어보자 해서 이 날을 즐겨도 좋다. 가을 바람이 좋고 가을 달이 좋지 않은가』

역시 신문기자도 가을 바람이 좋고 가을달이 좋다. 그것이 추석이다.

그러나 1천 몇백만명이 일시에 움직인다는 민족대이동의 교통대란은 예삿일이 아니다. 정부가 추석을 3연휴로 해서 공장이 한 5일쯤 일손을 놓게 되고,그로해서 하루 생산액이 몇억달러,수출차질이 몇억달러에 이른다는 등의 논의가 나오는 것도 그냥 들어 넘길일만은 아닌것도 같다.

어떤 사람만의 말을 빌리면,바다는 멈추기 위해서 출렁거린다. 이 관찰은 자연의 이치와 일치한다. 바람 등 바깥 힘으로해서 흐트러진 해면은,그것을 원위치로 돌리려는 힘의 작용으로 끊임없이 상하운동을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뜻을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우리는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한다. 마찬가지로,사람이 일을 하는것은 여가를 위한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사람의 행복은 여가에 달린 것으로 생각할 수가 있다.

같은 뜻을 자동차왕 헨리·포드는,자본주의의 발상과 용어로 부연하고 있다. 자동차왕다운 그의 비유를 빌리자면,일만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다. 반면 일할 줄을 모르는 사람은 엔진 없는 자동차와 같다. 한쪽은 위험하고,다른 한쪽은 쓸모가 없다.

자연의 이치나,옛 철인의 깊은 생각이나,대표적 자본주의자의 셈빠른 관찰에 공통되는 것은,결국 일과 쉼의 조화라고 할 수가 있다. 어릴적에 귀따갑게 들었던 교훈­공부할때 공부하고,놀때 놀아라­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일과 쉼의 조화가 말하기처럼 쉽지 않음을 우리는 체험해서 알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그럴 뿐 아니라,사회 전체의 기풍이나,나라를 단위로 한 경제의 성쇠를 생각할 적에 더욱 그 어려움을 실감한다. 사람들의 근로의욕이 떨어졌다든가,소비·향락이 지나치다든가 하는 개탄속에 그런 고충이 들어있다.

그렇다면,우리가 샴페인을 너무나 빨리 터뜨렸다는 핀잔도 있고 했으니,당문간이라도 모든 사람이 들러붙어 일만 하게 하면 모든 것이 풀릴까. 그렇지 않을 뿐 아니라,그렇게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어떻게 본다면,일과 쉼의 문제는 돈과 시간의 반비례식이나 같다. 돈이 적으면,시간이 길어진다. 이것이 지난 세월 주50여시간이라는 세계 으뜸 가는 노동시간의 배경이다. 마찬가지로 돈이 많아지면,시간은 짧아져야 한다. 요즘 초과수당이 불더라도 초과근무를 않겠다고 하는 풍조가 이를 말해준다. 이 반비례에는 어디엔가 균형점이 있을 것이지만,우리는 벙벙한 가운데 이 균형점을 지나쳐 버린 것이다.

일과 쉼의 조화란 바로 그 같은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그것을 일하는 사람의 윤리와도 관계가 되지만,나라의 막중한 정책과제로 귀착이 된다. 그것은 또 「일하는 권리」와 「노는 권리」,「노동의 측면」과 「생산의 측면」을 조화시켜야 하는 풀기 어려운 난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제의 어려움은,6공 들어서 공휴일을 늘렸다 줄였다 하느라 격은 혼란,요즘 격주토요휴무제 제안이 노동계에 불러 일으킨 혼선 등이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문제하나 하나가 다 일하는 사람이 받는 돈과,일하는 사람이 누리는 시간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섣불리 손을 대기가 어렵고,그러다 보면 정부는 정책부재란 핀잔이나 듣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삶의 이치나,요즘 세상 형편이 일과 쉼의 조화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정부로서의 마련이 없을 수 없고,그를 위한 사회성원 사이의 합의가 하루 빨리 도출되어야 한다는데 이견이 있을 수는 없다.

이 경우에 아쉬운 것은 다원사회다운 유연성이다. 우리의 일과 쉼을 돌아보아 경직된 것을 모두 풀어버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의문이 제기되어야 한다. 추석연휴 첫날이라,물음을 휴일문제로 국한하면 대충 다음 두가지가 된다.

­추석 3연휴도 좋지만,자금의 공휴일 제도는 과연 옳은 것인가. 명색은 법정 공휴일이라고 하지만,그 「법정」의 근거가 한낱 대통령제(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기 때문에 정부 마음대로 공휴일을 늘렸다 줄였다 하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은가. 국민적인 휴일정책·여가정책을 담은 공휴일법을 국회에서 제정해야 옳은것 아닌가.

­공휴일은 꼭 달력의 날짜를 따라 정하는 것이 옳은가. 공휴일을 주중에 두어서 일의 리듬을 깨기보다는 기념행사와 휴무를 분리하여,공휴일은 그 주의 토요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인것 아닌가. 그렇게 하면 토·일요일의 연휴가 되어서 좋고,노동시간의 손실이 줄어서 좋고,주휴 2일제를 예비할 수도 있어서 좋을 것 아닌가. 또 올,추석처럼 공휴일과 일요일이 겹쳐서 실휴하는 일도 없어서 한해 공휴일 17일을 다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니 얼마나 좋은가.<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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