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 휩싸여 상황 급했다”/경찰/“대부분 도주중… 조준 직격”/학생/전문가들 “정조준은 아니나 45도 안지킨듯”서울대 대학원생 한국원씨(27) 사망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면서 2학기 학원가에 큰 쟁점으로 부각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사건의 핵심은 경찰의 과잉진압 여부가 총기사용 안전수칙 이행여부의 두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경찰은 당시 상황이 총기를 사용할수 밖에 없는 급박한 상태였다고 주장하는 반면 학생들은 경찰측이 학생들의 파출소 공격후 달아나는 시점에서 사격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측의 이날밤 상황자료에 의하면 밤 10시10분께 학생 1백50여명이 파출소 인근에 집결,12분에 화염병 1백여개를 던지며 파출소를 기습해 옥상에 경찰 4명이 올라가 시과탄 67발을 투척했으며 파출소장 조동부 경위 등 2명이 공포탄 4발을 발사했다.
학생들의 화염병,돌공격이 계속 되면서 파출소안이 화염에 휩싸였으며 현관 방탄문이 불에 녹아내릴 정도로 상황이 급박해지자 18분에 조경위가 실탄 4발을 쏘고 이어 25분에 옆에 있던 변두환 경장으로부터 실탄 2발을 더 받아 쏘았다.
위협 사격을 당하고서야 학생들은 26분께 길건너로 달아났다는 것이 경찰의 주장이다.
조경위 등은 『당시 어둠속에서 화염과 사과탄 가스,끊임없이 날아오는 돌로 극도의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파출소 기습시위를 한 학생은 경찰의 주장보다 훨씬 적은 40∼50명 정도였고 10시15분께 기습으로 파출소 외벽이 불에 탔으나 내부까지 화염에 휩싸이지는 않았으며 대부분이 길건너로 달아난뒤 마지막으로 3명 정도가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고 말하고 있다.
즉 경찰이 사격을 할 당시는 이미 파출소와 경찰들이 급박한 상황에서는 벗어나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와함께 경찰의 사격안전수칙 이행여부에서도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 부분은 탄도와 숨진 한씨의 상처부위 등으로 상황추정이 가능하다.
당사자인 조경위는 『처음 4발은 공중을 향해 쏘았고 나중 2발도 안전수칙대로 상방 45도 이상 각도로 쏘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학생과 가족들은 『최대사거리가 1천5백m나 되는 총을 허공에 올려쏘았을때 어떻게 1백m 거리에서 가슴에 맞을 수 있느냐』며 조준사격에 의한 직격탄이라고 맞서고 있다.
조경위가 사용한 미콜트사의 38구경 리벌버권총은 조준사격이 가능한 유효사거리가 40∼45m정도이나 실제로 10여m이상만 떨어져도 명중률이 현저하게 떨어지므로 1백m 떨어진 이번 상황의 경우 조준사격 주장은 설득력이 희박하다.
전 FBI 사격교관이었던 이진호씨(50·현대 알류미늄 공업회장)도 『그 정도 거리에서 권총으로는 절대로 조준사격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45도 이상 총구를 들어 사격했다는 경찰의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최대사거리는 정확히 상방 45도로 사격했을때 도달하는 거리로 1백여m 지점에 총탄이 낙하하기 위해서는 거의 수직에 가깝게 높여 쏘든가 총구를 10∼20도 가량 약간들어 쏘는 두가지 경우가 해당된다.
한국원씨의 경우 가슴에 총탄을 맞은 것으로 보아 피격때 몸을 뒤로 젖힌 부자연스러운 자세가 아닌한 위에서 낙하하는 총탄에 맞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대해 경찰은 총탄이 한씨의 가슴을 뚫고 박힌 부위가 45도 아래(학생측 주장은 30도 정도)로 향해있다는 점을 들어 공중에서 낙하한 유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총탄이 발사된뒤 정점에 도달할때까지는 앞끝이 비행각도보다 상방으로 치켜진 상태로 날고 거꾸로 정점을 지나서부터는 훨씬 밑으로 기울어져 낙하하는 원리로 볼때 한씨 몸에 박힌 총탄각도는 45도 이상 치켜쏘았을때의 각도로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조경위는 조준사격을 하지 않았으나 다급한 상황에서 사격당시 최소한 45도이상 상방사격 안전수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홍희곤기자>홍희곤기자>
◎대학원 입학·졸업 과수석 수재/동향 부인과 단칸신혼 9개월/숨진 한씨 주변
한국원씨는 전남 구례군 구례읍 봉동리에서 양조장일을 하는 한주희씨(60)의 3남2녀중 넷째로 태어나 구례중과 순천고를 거쳐 83년 서울대 공업화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서클 활동이나 학생운동에도 별관심을 갖지 않은채 공부에만 전념,대학졸업과 대학원석사 과정 입학·졸업때 모두 과수석을 차지,세계적 과학자의 꿈을 착실히 다져왔다.
키 1백86㎝의 건장한 체격으로 2∼3일씩 실험실에서 밤을 새우는게 보통이었을 정도로 건강했던 한씨는 89년 석사과정을 마치고 방위근무를 한뒤 올봄 박사과정을 시작,과조교를 하면서 소련 유학준비를 해왔다.
한씨는 88년 이화여대 영어교육과를 다니던 동향출신 서윤경씨를 재경구례학우회에서 만나 사귀어오다 지난해 12월 결혼,사건현장부근인 신림9동에 방한칸을 보증금 9백만원,월세 6만원에 세들어 살아왔다.
학교 동료들은 『성격이 과묵했으나 착하고 성실해 주위의 신뢰를 한몸에 받았던 유능한 인재였다』고 한씨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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