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담판식」에만 익숙… 협상기술 미숙 큰 문제/영향력 확대위해선 분야별 전문가 양성도 시급【유엔본부=김수종특파원】 17일 남북한 국기가 세계 1백59개국 대표들의 축복속에 유엔본부의 국기게양대에 오른후 한 외교관은 「『부끄러운 얘기지만 한국외교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피력했다.
이같은 자성의 소리는 그동안 한국외교가 유엔을 중심으로 한 남북대결의 외교로 외교자원을 소모해왔다는 진단과 함께 이제 대결이 아닌 다자간 협상이 주류를 이루는 본격적인 외교를 해보고 싶다 의욕을 토로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면 앞으로 유엔무대에서 남북한의 대결외교를 피하고 세계평화나 국제협력과 관련된 고차원의 외교력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인가.
이상옥 외무장관은 유엔에서의 남북문제에 언급,『한국문제의 유엔불상정 원칙을 고수하겠다』며 유엔서 남북대결을 지양할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이 유엔가입후 비공식적으로 기자들에게 남북대화는 서울과 평양서 하고 여기서는 유엔과 관련된 상호협조 문제나 통일지향적인 문제를 다뤄나가야 할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북한도 현 유엔의 분위기를 의식하며 유엔에서의 신뢰구축에 당분한 힘을 쏟을 계산인듯도 하다.
따라서 유엔에서 남북대결 외교를 재현시킬 것이냐는 일단 북한의 태도에 달려있지만 한국측도 그 책임을 완전히 면할수는 없다. 외교관들의 의식구조속에는 수십년간의 걸쳐 굳어진 대결의식이 배어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남북문제를 떠나 한국외교가 안고있는 과제는 「다면외교」라고 유엔주변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유엔정회원국이 되고 또 유엔기능이 강화되면서 유엔에 맞는 외교기술이 습득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은 한국이 그동안 외곬로 추진해온 쌍무 외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현지 외교계의 중론이다. 결의안 하나 상정하기 위해 몇년을 연구하고 다국간의 협상을 벌이는 참을성과 외교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다자협상에서는 중국·일본과 함께 한국이 구미국가들에 뒤진다는 지적이 높다.
독일도 유엔에 가입하고 유엔의 복잡한 외교교섭 메커니즘을 터득하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양자가 담판짓는 것을 외교의 골간으로 삼아온 한국 유엔외교는 내일부터 당장 실험대에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
유엔외교는 또한 전문가의 양성을 요구하고 있다.
남북대결 외교에서는 유엔이 다루는 이슈들에 대해 전문적 접근이 필요치 않았다.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없으므로 전문지식이 필요없었던 것이다.
환경문제 마약문제 군비문제 등이 곧 유엔에서 토의되는데 이에 대응할 외교인력은 딱할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엔 가입문제에만 전념했지 장기적인 인력관리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장기계획을 세우는 나라에서는 외교협상을 하는 사람과 전문가들을 적절히 배합해 유엔외교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엔대표부의 신기복 차석대사는 15년전 제네바에 WHO대표로 갔을때 중국대표 명단이 3페이지나 돼 이상히 생각했다. 이들 30전후의 젊은이들은 당시 방청석에 앉아있었는데 그들이 지금 WHO의 전문가들』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유엔에서 가장 큰 지구촌 이슈로 예상되는 군축·환경·마약문제에 있어서는 지금부터라도 국제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유엔외교에서는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주축으로 20여개국이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게 현실이다. 여기에는 물론 경제력이 큰 요소가 되지만 소위 소국이라도 유엔의 터줏대감을 만들면 이같은 막후협상 그룹에 끼일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엔만을 무대로 하는 외교관들은 협상과정에서 서로가 통하기 때문에 상호간의 이익을 위해 「기브 앤 테이크」의 교환이 성행하는게 유엔무대라는 것이다. 마치 국회에서 여야 다선의원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서로서로 봐주는 협상이 성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같은 유엔 전문가를 양성하려면 현재와 같은 인사정책으로는 요원하다는 풀이이다.
한국은 총 1백66개 회원국중 GNP나 무역규모 수준으로는 세계 15내외고 유엔분담금 납부규모로도 20위를 조금 웃도는 상위권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상응하는 유엔내의 영항력을 행사하려면 유엔외교에 대한 새설계도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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