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이 이땅에 불사의 공룡이 된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두려운 것은 나날이 세지고 있는 그 가공할 힘이다. 자제력과 양식이 없다. 정부도 국민경제도 지금은 그들을 제어할 수 없다. 잘못하다가는 그들의 인질이 되기쉽다. 그들이 한국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도 이것은 변하기 어렵다. 경제개발에 주요한 한몫을 한 그들의 공로는 인정받을만 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6공이후 정치체제가 전체주의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발전하고 경제적 상황도 안팎으로 변화함에 따라 정치권력에 대한 위상도 「종속」에서 「독립」으로 급속히 강해져가고 있다. 또한 경제가 양적으로 팽창,다원화되고 질적으로 첨단·고도화함에 따라 정부가 「대조정자」의 역할을 예속 할 수가 없다. 경제는 민간주도로 이끌어 갈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의 흐름이다. 여기에서 국민과 정부는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국민경제를 재벌기업들에 내맡겨도 될 것인가.가장 크게 걸리는 것은 재벌기업들의 소유집중과 윤리성이다.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해 설득력있는 행태를 보이지 않고서는 정부나 국민들이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않을 것이다. 최각규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소유와 경영은 분리돼야 한다』며 기업의 경제력 집중분산책을 강력히 추진할 것을 시사했었으나 재계의 정면저항앞에 무산됐다. 재벌의 소유집중은 완화되기는 커녕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경제기획원의 자료에 따르면 총 자산 4천억원 이상인 61개 대규모기업 집단의 내부지분율은 46.9%로,지난해의 45.4% 보다 오히려 높았다. 내부지분은 소유주와 친인척·임원 등 특수관계인과 계열사지분 등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지난해말 국내 6백47개 상장기업들의 평균대주주지분율 27.8%를 크게 상회한다. 우리나라의 5대 재벌그룹인 현대(이하 내부지분율 67.8) 대우(50.4) 삼성(53.2) 럭키금성(38.3) 쌍용(42) 등도 소유집중도가 높다. 계열기업들의 기업공개율도 높을 수가 없다. 61개 재벌그룹(계열기업 9백15개)의 공개계열기업은 2백26개사로 공개비율은 24.7%에 불과했다. 5대그룹은 8∼18%였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무엇때문에 이처럼 소유욕이 강한가. 지분율이 절대다수비율인 51%가 돼야 마음이 놓여서인가.
우리나라의 경우 주식을 음성적으로 매입,기업을 강제인수하는 소위 적대적인 기업인수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미·일 등 선진국의 기업들은 내부지분율이 20% 미만이다. 기업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을 정도의 지분만 갖고 있으면 된다. 굳이 51%선을 유지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미·일 기업은 재단법인 등이 대주주인 경우가 많고 개인이 대주주라도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는 것이 상례다. 한국의 재벌기업 총수처럼 대주주가 직접 경영까지 맡아 「황제」처럼 군림하는 것은 선진경제에서는 20,30년대 독점자본주의체제 아래에서나 있던 일이다. 더구나 이들 재벌들이 얼마 되지않는 상속세를 물으면 「부의 왕국」을 세습적으로 승계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신흥공업국 가운데서도 한국뿐이 아닌가 한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의 상속세제나 관행이 관대하다. 소유집중의 심화가 경제·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돈의 힘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금권정치의 농도가 짙어질 것이다. 또한 한국재벌의 제2천성이 돼버린 소유권의 강화와 문어발식 경영은 지속될 것이다. 정부는 경제력 집중을 약화시키기 위해 계열 및 비계열회사에 대한 출자총액한도를 현행 순자산의 40%로 제한하고 있고 계열기업간의 출자를 금지하고 있으나 증자 등으로 자산을 증대시키거나 간접적인 계열사간 출자로 정부의 이 규제를 피해가고 있다.
6공출범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는 상당히 진전됐다. 경제적 민주주의는 얼마나 진전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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