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사와 마패」 야담이나 사극에 나올 구시대의 유물이 지금도 유령처럼 나타나 으스대고 다닌다는 것이 해괴하다. 마패하면 얼른 암행어사가 떠오른다. 또한 어사하면 이몽룡이 성춘향을 극적으로 구출하고 재회하는 춘향전의 클라이맥스가 눈에 선하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나 옛 관객들은 이 장면에 이르면 그만 참을 수 없다는듯 흐느끼고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마패는 고려시대에 처음 생겼다. 이것은 관원이 공무를 위해 지방에 갈때 통신수단으로 마패를 징발할 수 있는 징빙으로 쓰인 것이다. 조선조에 그대로 계승되어,세종 때에 새로 만들고 옛것은 회수했다. 구리로 만든 둥근 패의 한쪽엔 말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조선조 말기까지 형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암행어사에게 지급된 마패는 인장대용으로 사용,어사 출두시엔 역졸이 손에 들고 호기있게 「암행어사 출두야」하고 크게 떠들어 대면 관원들이 벌벌 떨었음은 춘향전에 나오는 그대로이다. 마패가 악용된 사례도 많았을 것이다. 갑신정변의 주역인 길균 김옥균을 암살한 자객 홍종우는 전북 순창에서 의병장 최익현의 것을 훔쳐 서울까지 도망쳤다. ◆지금이 조선조 말기나 춘향전의 시대인가. 「국가특명단」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내세운 범죄단체가 현대판 「어사와 마패」극을 연출하다가 들통이 났다. 이들이 만든 속칭 「마패」엔 말 그림이 아닌 고 박정희 대통령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대통령임명 국가특수공로 제1호」라는 신분증까지 곁들여 각종 민원은 얼마든지 해결한다고 「뻥」을 터뜨려 속임수를 벌였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한 노릇이다. ◆남을 속이고 골탕먹이는 사기가 괘씸하고 고약하지만 그런 사술에 어이없게 넘어가는 어리석음과 가짜 권력이라도 권력이라면 기를 못펴는 세태가 서글프다. 권력의 사슬이나 그림자라도 잡아 보려는 허망한 욕망이 왜 생겨났는지 이런 기회에 철저하게 파헤쳐 볼만하다. 「어사와 마패」는 옛 이야기가 아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