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초 탈출·망명해온 북한 외교관 고영환씨는 북한의 실정에 관해 직업관료답게 꽤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식견을 전해줬다. 지금까지 북으로부터 탈출·망명해온 인사들이 적지 않았지만,그런 점에서 우리의 북한에 대한 인식에 도움을 주는 대목이 많다.고영환씨의 기자회견은 특히 그의 외교관이라는 전문분야 때문에 동유럽 혁명으로 위기에 직면한 북한의 오늘과 관련해서 주목할 만하다. 대체로 그가 전한 내용은 우리의 인식과 엇비슷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는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 때문에 5년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이며,아마도 「중국식 개방」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북한의 경제난에 대한 그의 설명은 특히 인상적이다. 또한 북한이 중국식 개방을 따를 것이라는 그의 예측도 이미 드러난 추세와 일치하고 있다. 북한이 두만강유역에 경제특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그는 북한의 대남전략이 아직도 「통일전선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남북간의 직교역도 북의 폐쇄체제에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정한다. 이 대목은 우리쪽에서도 어느 편이냐하면 보수적인 의견과 비슷하다.
그러한 판단의 근거로 그는 「사랑의 쌀」 직교역을 예로 들고 있다. 고영환씨가 예로 들지않더라도 북한의 경제교류는 체제유지에 영향을 주지않는 한도안에서만 허용될 것이 확실하다. 다시 말해서 공산품 소비재나,쌀 같은 체제평가에 영향을 줄만한 상품의 교역에 신중한 것임은 이미 짐작된 일이다.
북한이 3년내에 핵무기개발에 성공할 것이고,핵안전협정 교섭은 「시간벌기」 전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경고도 한국을 포함한 서방진영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온 의구심과 맥이 통한다.
고영환씨의 탈출·망명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북한의 전문관료 집단안에 동요와 소극적인 비판의 가능성이 움트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의 탈출·망명은 그가 차지하고 있었던 직급 이상으로 북한의 전문관료 조직에 타격을 줄 것으로 짐작된다.
북한이 안팎으로 몰리고 있는 역풍을 헤치고 나가기 위해서는 안으로 통제를 더욱 강화하면서,밖으로 「통제된 경제적 개방」을 시도하는길 밖에 선택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이런 대세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북정책 내지 통일전략을 구성해야할 것이다.
전문관료였던 고영환씨의 기자회견은 큰 줄기에 있어서,이러한 우리의 인식과 일치하고 있다. 정부의 「한건주의」나 국민일각의 막연한 통일열기 모두 새로운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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