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리한 시간은행/이천표 서울대교수(목요진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리한 시간은행/이천표 서울대교수(목요진단)

입력
1991.09.12 00:00
0 0

여유자금이 있으면 은행에 가예금을 하고 돈이 필요하면 은행에 가서 빌릴 수가 있다. 예금한 돈에 대해서는 이자를 받고 대부한 돈에 대해서는 대부이자를 내고 약정에 따라 상환한다. 자금에 대해서는 이렇게 은행시장이 잘발달되어 있어 개인과 기업에 큰 편의를 주고있다. 나아가 은행시장의 존재는 저축하려는 사람의 자금을 투자하려는 사람에게 이동시키어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함으로써 국민경제 전체의 발전을 가져온다.어떤 짧은 기간동안을 두고 볼때 어떤 사람은 여분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은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것. 그래서 여유있는 사람의 것을 부족한 사람에게 대여했다가 차후 갚게 함으로써 대차거래의 양당사자는 물론 사회 전체로서도 이익을 볼수있게 하는 것에 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 이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시장이 제대로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시장을 통한 거래의 이익을 사실상 희생시켜온 것이 현실이다.

근년 이른바 금융혁명에 따라 돈이 아닌 다른것에 대한 대차거래가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리스업에서 비행기,기계 등 고액의 물건으로부터 냉장고 등 소액의 내구소비재의 대차거래가 이루어지고 있고,비금융업 차원에서는 미술품의 대여 등 활동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의 대차를 다루는 시간은행 시장은 아직 우리사회에 제대로 조직되어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떤 기간동안 여유시간을 대여할 수 있는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여유시간을 빌려 이용하고 나중에 시간으로 갚으려는 사람이 모두 상당하리라 생각된다. 시간은행에 대한 시간공급과 시간수요가 모두 잠재하고 있어 이것들을 시간은행 시장으로 조직하면 시간은행을 이용하는 사람이나 사회 전체에 큰 이득을 가져다 주리라 여겨진다. 이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시간은행 시장에서는 수요과 공급에 관해 생각해 보자.

집안에서 환자가 생겨 입원을 하게되면 가족들이 윤번제로 간병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결코 쉽지 않음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은 간병사에 의존하고 간병사의 서비스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나 그렇지 못한 집안은 가족들이 몸으로 때우게 된다. 이러한 때 차후 여유시간이 생길때 대신 일해주기로 하고 다른 사람의 간병서비스를 확보할 수 있다면 그렇지 않아도 병원비 때문에 부담을 느끼게 되는 많은 가계에 큰 도움이 될것이다. 간병사의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노력을 빌릴 일은 우리 일상생활중에 대단히 많다.

이중 어떤 것은 당장 돈을 주고 관련 서비스를 사서 이용하면 편한 것이나 다른 것중에는 차후 대응하는 노력으로 갚기고 하고 당장 다른 사람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좋은 것도 많다. 돈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노력으로 갚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다른 사람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이런 조건 아래에서의 다른 사람의 노력에 대한 잠재수요는 상당할 것이다.

자녀들을 다 키워놓고 난 여성인력이나 정년 후의 장노년 인력들의 여유시간은 시간은행에의 첫번째 잠재공급 인자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인력은 여러가지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중 일부는 무보수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나 나머지 대부분은 무언가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사실상 시간을 죽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을 위한 적당한 서비스를 하게하고 그렇게 노력한 시간을 시간은행에 예치하였다가 나중에 찾아 쓸수 있게 제도화한다면 이들의 상당수는 기꺼이 이런 일을 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일은 당장 이들에게 화폐수입을 가져다 주지는 않으나 나중에 돈을 쓰면서 확보해야할 다른 사람의 서비스를 미리 마련해 놓는 것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여성인력이나 장노년 인력에 더하여 불완전 고용상태에서 파트타임으로 좀 더 일하려는 사람의 노력이나 하루 8시간을 일하면서도 더 일하려는 사람의 노력 등 시간은행에 대한 잠재공급 요인은 많다.

이러한 잠재수요와 잠재공급이 시간은행 시장에서 실제의 수요와 공급으로 되게끔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사회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종래에는 시간은행 시장을 조직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이러한 이익의 가능성이 사장되었었다.

은행 내지 그것과 유사한 것을 차리고 그곳에서 모두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정확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데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였으며 시간은행으로부터의 이익이 이러한 비용을 능가하지 못하리라 여겨졌었다. 그러나 근년의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각종 대차거래를 정확하고 값싸게 취급할 수 있게끔 사정을 바꾸어 놓았다.

우선 손쉽게 왕래할 수 있는 지역에서 소규모로 시간은행이 시험된후 차차 그 기능을 확충하도록 되면 좋겠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시간은행 제도가 활용될수 있으면 좋겠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