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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음대의 자정선언(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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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음대의 자정선언(사설)

입력
199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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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의 서늘한 기운과 함께 상쾌한 자정의 바람이 대학에서 불어온다. 서울대 음악대의 교수회의는 예능계 대학입시 부정의 온상인 과외·레슨을 금지하기로 결의했다. 부정입학에 연계되어 전직 대학총장이 잇달아 구속되는 마당에 한가닥 청량감을 불러 일으킨다.우선 붙고 보자는 비뚤어진 입시풍토는 실기에 비중을 둔 예·체능계에 소질과 실력보다 비정상의 편법을 동원케하여 부정을 조장한게 엄연한 사실이었다. 특정 대학의 특정교수의 과회를 받아야 합격이 보증된다는 소문은 예·체능계 실기부정이 밝혀짐으로써 한낱 뜬 소문이 아님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로 인해 입시부정의 차원을 넘어 예술인과 예술교육이 입은 상처는 치명적이라 할만한다.

거액의 기부금을 받고 예비합격자의 성적을 조작한 입시부정은 학교 당국자들에 의해 구조적으로 저질러 졌으나,예능계 부정은 강사나 교수 개인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차이가 있을뿐 불법과 도덕성에서 동류나 다름없다고 할것이다. 그럼에도 대학이나 교수들은 허탈과 자탄에 빠져 속수무책인양 사태의 악화를 방관하다시피 버려두고 있었음은 이해하기 조차 어려웠다.

대학인과 예술인의 양식이 이다지도 무디어 졌는가하는 의구심이 생겼고 실망도 적지 않았다. 자정능력이 마비되지 않았나 하는 우려도 숨기기 어려웠다. 사실 부정에 못잖게 두려운것은 부정에 대한 무감각이다. 입시부정을 지나가는 소나기쯤으로 여기면 회생의 가망은 더욱 희박하다.

이런 맥락에서 음악계의 부조리는 중고생의 과외레슨에서 생겼다는 서울대 음대 교수들의 판단과 인식은 비록 늦기는 했으나 옳았다고 생각하며 그 결의에 적극 동감의 뜻을 표하게 된다. 이 결의는 음악계의 자정과 입시부정의 배격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부각될만 하다.

지연·혈연·학연·인연 등 끈이 있어야 출세한다는 팽배한 「연줄주의」는 우리 사회의 최대 병리현상이며 특히 예술계가 심하다. 어느 대학,어느 교수에 따라 진로가 결정되고 세속의 성공이 기약된다는 관념은 치졸하고 전근대적인데도 아무 부끄러움이 없이도 통하는 세태는 결국 예술을 타락시키고 만다. 분파주의 풍토에서 무슨 창조가 가능하겠는가 자문하면 저절로 깨달을 만한 일이다.

입시부정의 근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학과 재단이 자정의 의지만 지녔다면 지금과 같은 곤경을 자초하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대학의 간판을 달고 반지성의 부정은 범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기부금 입학제라는 궁색한 대책도 자정의 바탕위에서 시작되었으면 오늘 같은 저항은 한결 덜어졌을 것이다.

이번 자정의 결의와 의지는 하나의 대학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그 진의가 널리 퍼져가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대학이 살아난다. 이런 일은 일파만파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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