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적 모욕감 앞세워 의원 12명이 반기/새 협정 지지 군부동향 변수… 쿠데타설도【싱가포르=최해운특파원】 소련 공산당붕괴 등 냉전체제 종식의 여파가 필리핀의 수비크만 미군기지에까지 미치고 있다.
미국과 필리핀 정부가 우여곡절끝에 합의한 수비크만 재임차 협정에 필리핀 상원이 9일 반대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미군의 계속 주둔에 제동이 걸렸다.
따라서 기존 임차계약기간이 끝나는 오는 16일까지 극적인 상황변화가 없는한 냉전구도하에서 지난 25년간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방위에 핵심역할을 해온 수비크만 미 해군기지는 폐쇄되고 8만명의 미군이 그곳을 떠나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됐다.
23명의 상원의원중 12명이 서명한 이 결의안은 「재임차 협정안은 필리핀 헌법에 명백히 위배되는 일방적이고도 불평등한 조약』이라고 비판했다.
이 결의안은 법적인 구속력을 지니지 않은 것으로 필리핀 상원은 논의를 거쳐 오는 18일 이전에 협정인준안을 최종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협정안 인준은 상원의원 3분의1인 8만명 반대해도 부결되게 돼있는데다 반대파 의원 12명의 입장에 변화조짐마저 없어 극적인 전환점이 마련되지 않는한 미군철수는 불가피한 실정이다.
새 협정안의 주요내용은 ▲피나투보 화산폭발로 황폐화된 클라크 미공군지기를 내년 9월 폐쇄하는 한편 ▲미국은 향후 10년간 수비크만 기지를 재임대하는 대신 필리핀에 매년 2억2백만달러씩 임대료를 지불한다는 것.
그러나 상원의장인 조비토·살롱가의원이 주도하는 협정반대파는 『이같은 임대료는 미국이 미군주둔을 허용하지 않았던 다른 우방에 준 원조와 비교할때 민족적 모멸감을 안겨줄 정도로 적다』며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일부는 식민주의 내정간섭 등 민족주의적 가치와 배치되는 관념을 내포한 미군주둔이 무조건 싫다는 입장이다.
반대파중에는 아키노대통령의 시숙인 마카피통·아키노의원과 살롱가의원 등 남편의 오랜 친구들이 포함돼 있어 아키노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당초 예상보다 반대파의원이 불어난데에는 최근 소련의 격변이 심리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재집권과 공산당 해체 등 일련의 소련사태는 의원들에게 소련이 더이상 아태지역의 안보에 위협적 존개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 미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돈을 받아 내야한다는 심리를 부추긴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미국은 더이상 양보는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미국은 현재 해군의 예비기지,또는 함정수리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수비크만은 싱가포르와 동경을 잇는 동아시항로 네트워크의 주요 연결기지로써 이용하려할뿐 군사적 중요성은 별로 없다며 수비크만의 가치를 애써 절하하고 있다.
미국은 또 겉으로는 협정안이 끝내 부결되면 철수를 위해 시간을 끝다가 내년 5월 총선으로 새로 구성된 정부와 유리한 입장에서 재협상 하겠다는 배수진을 치며 버티기 작전을 구사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상원의 결의안 통과직후 체니 미국방장관은 『상원에서 인준이 거부될 경우 수비크만 기지를 괌 등 다른지역으로 이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다급해진 아키노 대통령은 10일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어 『미군이 떠나면 클라크 기지에서 2만5천명,수비크에서 4만명의 실직자가 생기고 연간 수십억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입게될 것』이라며 협정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호소했다.
이같은 와중에서 군부의 동향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리산드로·아비디아 군참모총장 등 군수뇌부는 한결같이 『미군기지 없이는 우리의 대공방위 능력은 제로수준이고 군현대화 계획도 무산될것』이라며 협정안에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정계 일각에서는 미국이 지지하는 쿠데타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수비크만을 놓고 벌이는 「도박」에서 누가 승리할지 자못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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