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체제로 전환을” 의미/소선 “일방적” 비난소지/고르바초프·옐친등 대응방식 귀추 주목【워싱턴=정일화특파원】 베이커 미국무장관이 4일 발표한 「소련의 정치변화를 보는 미행정부의 5원칙은 향후 미소관계 정립을 위한 미국측 청사진이라고 볼수있다.
미국에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이후,특히 쿠데타이후 고르바초프가 다시 권좌에 복귀한후 소련을 보는 2가지 상반된 시각이 있어왔다.
첫째는 왜 미행정부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에 집중적인 경제지원을 하지않느냐는 여론이었다. 둘째는 소련은 아직도 2만7천개의 핵탄두를 갖고 있으면서 1천3백기 이상의 장거리 미사일이 미국을 향해 겨냥돼 있고 도 쿠바같은 공산국가를 계속 지원하는데 왜 행정부가 소련에 경제지원을 하려하느냐는 것이었다.
쿠데타이후 소련사회주의 연방이 붕괴되고 쿠바,아프가니스탄 등에 대한 대외지원을 할 능력자체가 격감됨에 따라 『소련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한다』는 여론이 강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대소지원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측도 목소리를 잃지않고 있다.
베이커국무장관의 5개원칙은 다분히 이 2개의 상반된 여론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돼있다.
소련이 미국처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가는것이 확실하다면 경제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돼있기 때문이다.
5개항은 기왕에 소련이 민주혁명을 성공시킨 입장에서는 거의 당연한 정책방향이라고 볼수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강의를 하는듯한 내용으로 돼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그것은 첫째 민주적 가치와 관행 그리고 헬싱키협정의 원칙에 따라 소련인 스스로가 그 장래를 평화적이고 지속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고,둘째는 현국경선을 존중해야 하며 이를 변경하려면 역시 평화적이고 상호동의 원칙아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민주주의란 「법의 지배」가 원칙이며 모든 변화는 선거과정을 통한 평화적 방법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넷째는 개개인의 인권존중과 소수민족에 대한 동등대우,다섯째는 국제법과 국제적 임무를 존중할것 등으로 돼있다.
그리고 베이커장관은 앞으로 정립될 소련내 공화국끼리의 관계 및 공화국과 중앙정부와의 관계에서도 이 다섯가지 원칙이 적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전통적인 미소관계에서는 보면 소련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의 미국 체제에 대한 완전굴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볼수있다. 소련의 보수강경주의자 입장에서는 5원칙중 어느 하나도 만만하게 받아들일만한 내용이 없다.
개혁주의자들중에도 소련변화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일방적이라는 비난도 있을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지난 40년간 대적(archenemy)으로 남아온 소련에 대해 본격적인 경제지원을 하려면 이만한 조건은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이커장관은 이 5개항을 오는 10일께 자신이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길에 논의할 대소경제 및 기술지원과 직접 연관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베이커 장관은 자신의 소련방문 목적을 말하는 가운데 첫째는 이 5개원칙을 소련 지도자들과 국민에게 전달하고 두번째는 경제·기술·인도적 지원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그의 대소 경제·기술지원은 5개원칙이 지켜지는 조건하에서만 본격적으로 진행될수 있을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다만 인도적 지원,즉 금년 겨울을 넘기는데 필요한 식량 및 의약품 등은 상황에 따라 긴급히 공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고르바초프나 엘친이 베이커의 5개항에 대해 즉각적인 찬성을 표한다면 미행정부로서는 『소련에 원조를 주는것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여론을 쉽게 무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5개항이 미행정부 지침이기 때문에 형식상 그런 즉각적인 반응이 나올수도 없을뿐 아니라 아무리 미국의 경제지원이 다급하다해도 소련이 쉽게 이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뿐만아니라 5개항은 주관적 가치판단에 의해 그 결과를 얼마든지 달리 해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엇이 민주적이고 무엇이 평화적인가에 대해 지난 40년간 동서양 대진영은 줄곧 주장을 달리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베이커의 5개항 공표를 소련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그리고 미국이 언제 5개항이 만족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결론을 갖고 얼마만큼의 대소 경제지원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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