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력에 의한 패권종언… 정치력이 좌우드디어 소련의 공산독재는 무너지고 말았다. 앞으로 소련의 민주화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진행될지는 두고 봐야 겠지만 적어도 과거처럼 공산주의 이념에 개초한 일당독재 체제가 부활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이러한 변화는 참으로 엄청난 사건이다. 지난 2주간의 변화는 소련 사회의 기본 권력구조를 뒤흔들어 놓았을 뿐만아니라,세계질서의 구조까지도 바꾸어 놓고 있다.
우선 세계의 세력균형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반세기동안 국제정치를 지배해온 두 총강대국중의 하나가 더 이상 초강대국으로 행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실 과거에는 두 초강대국이 경쟁했기 때문에 국제적 긴장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일찍이 프랑스의 석학 레몽·아롱이 지적한바와 같이 초강대국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숨쉴 틈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두 초강대국중의 하나가 적어도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은 초강대국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 19세기를 영국이 지배했듯이 21세기는 미국이 지배하게될 것인가?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소련이 초강대국의 위치를 잃게된 원인은 그 무슨 군사력이 갑자기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소련의 핵무기는 아직도 그대로 있다. 문제는 소련의 경제와 정치에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우에도 앞으로 미국이 어떤 위치에 서게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미국과 군사력에 의해서 결정될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정치적 역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봐야한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미국 국민을 설득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것이다. 지난 몇십년동안 미국 지도층은 소련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 국민들이 경제적 및 군사적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국민들을 설득해 왔다. 그러나 이제 소련의 위협이 사라진 마당에도 미국이 계속해서 해외에 군사기지를 유지하고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개입하기 위해 미국 국민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미국 젊은이들이 계속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국제적 역할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사라져가고 있는 시기에 미국의 역할에 대한 국제적 기대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는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소련공산당 체제가 몰락하면서 미국의 위치는 거의 패권적인 것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많은 나라들은 미국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할 책임이 있고 또 해결할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의 힘은 패권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의 국제관계에서는 군사력보다 경제력이 더 큰 비중울 차지하게 되는데 미국의 경제는 지난날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어려운 입장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련의 공산독재가 무너졌다고 해서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고 할수는 없다.
그러면 앞으로의 세계질서는 어떻게 결정될 것인가.
역사적으로 보면 세계의 세력균형은 대체로 군사력이 좌우했고 첨예한 국제적 갈등은 이념적 대결이 주원인이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사의 대전환은 그와같은 진통적 공식을 뒤엎고 있다. 소련의 위기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소련 스스로의 내부적인 체제문제에 기인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의도적으로 소련을 무너뜨렸고 이제부터는 중국을 붕괴시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추측은 바로 소련 KGB의 사고방식과 일치하는 것이지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으 총한방 쏘지 않고 초강대국을 무너뜨릴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사실은 미국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그 어느나라도 그런 무한한 마력을 가진 나라는 있을수 없는 것이다.
소련의 쿠데타가 시도되는 순간부터 중국은 CNN방송을 중단시키고 모든 국내보도를 엄격히 퉁제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최근에 중국에서 만나본 중국 사람들은 소련사태를 모두 잘알고 있었다. 결국 밖의 소식은 각종 현대정보 매체를 타고 국경을 넘어 중국사회 안으로 스며 들어간 것이다. 앞으로 중국이 정치적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면 그것은 미국의 음모때문이 아니라 중국내부의 사정때문일 것이다.
결국 미래의 세력균형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각국가들의 정치적 역량이다. 물론 외부로부터의 군사적 위협,또는 내부의 이념대립 등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런 문제들에 직면한 경우에도 그 나라의 총체적인 정치력에 따라 국제질서 속에서의 그 국가의 운명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즉 자유로운 국민적 합의와 안정된 제도,그리고 탁월한 지도력을 가진 나라들만이 앞으로의 세계질서를 구축해 나가는데 있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사회과학원 원장·주소미 대사>사회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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