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못돌아간다” 배 난간 부여잡고 오열/소 관리도 참석 조의… 유족회선 진상규명 요구8년의 세월은 그날의 슬픔과 분노를 삭이기에 부족했다. 유족들은 찬바다에 꽃을 홀뿌리며 넋이라도 찾듯 수중고혼이된 자식의 이름과 부모를 애타게 불렀다.
KAL기 희생자 2백69명이 잠든 망망대해는 초혼을 들었는지 꽃다발을 무심히 거둬삼켰다.
그러나 망인의 이름은 해풍과 물결속에 파묻혀 되돌아 오지 않았다.
빚바랜 영정과 사진을 어루만지며 차마 그대로 돌아설수 없는 유족들의 마음을 아는지 뱃고동이 사할하린 앞바다에 울려퍼지며 작별을 대신했다.
8년만에야 현지에서 거행된 이날 추모제는 KAL기 희생자유족회(회장 홍현모)가 지난 3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요청한것을 소련정부가 허용해 성사됐다.
유족을 태운 선박은 상오10시(한국시각 상오8시) 사할린 홈스크항을 떠나 12시20분 피격해역에 닻을 내렸다. 소련군악대가 애국가와 「고향의 봄」을 연주하는 속에 추모제가 시작되자 유족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고 영정과 생전의 사진을 꺼내들어 복받치는 슬픔품과 그리움을 달랬다.
추도사는 홍회장과 공노명 주소대사,표도로프 사할린주지사가 했는데 우리측은 『냉전대결 상황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진상이 소련의 급속한 변화에 맞춰 규명돼야 한다』고 소련정부의 성의있는 노력을 촉구했다.
피격당시 교체기장이었던 고 김희철씨의 딸 수지양(22)이 『아버지,허전해질때마다 그리워지는 아버지,그해 중학 2학년이었던 철부지는 이제 대학 4학년의 어엿한 숙녀가 되었습니다』라고 울먹이며 고별사를 하자 유족들은 배난간을 붙잡고 『이대로 돌아갈수 없다』며 오열했다.
소련정부 관계자와 사할린 동포대표도 눈시울을 붉혔다.
사고로 아들부부와 손자 등 4명을 잃은 박윤섭씨는 손자 이름을 부르며 손자가 좋아했다는 과자 꾸러미를 바다에 던졌고 당시 부기장이었던 선동휘씨의 미망인 유행자씨는 집앞뜰 대추나무에서 따온 대추 한접시를 뿌리며 흐느꼈다.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유족들에게 표도로프 주지사는 『우리도 슬픔을 함께 나누고 용서를 빌러왔다』며 최대한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유족들은 2일 하오3시 KAL전세기 편으로 귀국한다.<유지노 사할린스크="연합">유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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