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규모따라 공사진척 좌우/업자는 “비용충당” 싸구려 시공/입주자들만 부실피해 “바가지”『돈쓰면 합법,안쓰면 불법』
비리가 판치는 건축공사장의 실태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이 말은 건물주나 공사업자가 관련공무원들에게 상납하는 타이밍과 뇌물의 크기가 공사의 순조로운 진행을 가름하는 요소라는 뜻이다.
우리사회에 만연돼 있는 뇌물관행이 가장 공공연한 곳이 건축업계라는 것은 건축업자들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상태이다.
민간이나 관급공사를 막론하고 각종 건축현장에서 빚어지는 부실공사는 업자의 비양심적 시공에도 책임이 있지만 대개의 경우 관청에 대한 상납이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8월 경기 수원시 권선구 탑동의 S다세대주택 반지하층에 신혼살림을 차린 박모씨(32·회사원)는 『입주 첫날부터 지금까지 온갖 하자보수공사 때문에 단하루도 편한날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비만오면 방바닥에 물이 고이고 전선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려 걸핏하면 합선사고에 전화까지 불통되기 일쑤인데다 벽이 얇아 옆집과도 대화를 할수있을 지경이었다. 하수구에서 악취가 심하게나 변기에 물감을타 실측해보니 화장실하수가 정화조가 아닌 생활하수구로 그대로 빠져나갔다.
어이가 없어진 박씨는 같은 불편에 시달리는 주민들과 상의끝에 측량사를 고용,설계도면서부터 재검토해본 결과 당초 설계와 시공결과가 판이하게 다른것을 발견하고 아연했다. 내부치수가 몇십㎝씩 다른것은 물론이거니와 5㎝ 두께로 계획된 단열재가 1㎝ 정도로 시공됐고 외곽담도 콘크리트 기초없이 엉성하게 맨땅에 벽돌만을 쌓은 상태였다.
사용자재도 업자측의 주장과 달리 형편없는 조악품을 사용,곳곳에서 파이프가 터져 물이 새고 곰팡이가 피어났다.
박씨 등은 이같은 부실공사 내용을 꼼꼼히 정리,지난달 다세대주택 주민 연명으로 관할 권선구청에 시공업자를 고발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원래 아무 하자가 없었는데 1년동안 함부로 사용하고 이제와서 웬 트집이냐』며 『그 지역이 원래 침수지역인데 하필이면 그런 집에서 사느냐』고 엉뚱하게 비웃는 구청측의 태도에 아연실색했다.
주민들은 명백한 부실공사인데도 어떻게 준공검사를 받아냈는지에 대해 항의했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을 듣지못했다.
대부분의 건축업자들은 『설계대로 시공하는 경우가 도리어 예외』라며 『관계공무원들에게 돈을 쓰고 안쓰고에 따라 되는일도 안되고 안되는 일도 되는 복마전이 바로 건축공사판』이라고 말한다.
건축업자와 관의 거래는 토지매입과 건축허가를 낼때부터 시작돼 기초공정,조적(벽돌쌓기),전기·배관,내장·미장공사를 거쳐 마지막 준공검사를 받아내기까지의 건축 전과정을 통해 수시로 이루어진다. 공사와 직접 상관없이도 평소 확실한 끈을 맺어두기 위한 상납이 휴가비·경조사비·관청의 행사지원금·상납용 고스톱 등 온갖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개인주택을 짓는 소규모 업자에서부터 대규모 아파트 건설업자,정부 발주공사를 맡는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상납으로 이루어진 공생관계에는 예외가 없으며 실제로 건설관련부서는 투서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곳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총공사비의 5∼10%로 정률화돼 있다시피한 뇌물자금이 별도로 업자의 주머니에서 염출되는 것이 아니라 값싼 자재를 쓰고 교묘하게 설계를 변경해 남는 돈으로 충당되는 것임은 말할것도 없다. 결국 건물소유자나 입주자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와 부실공사의 위험을 떠안게 된다.
A건설업체 대표 김모씨(40·서울 강남구 개포동)는 『정부에서 강력한 의지를 갖고 불법·부실공사 현장을 단속하고 건설비를 현실화하지 않는한 고질적인 뇌물관행은 치유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장판공비 1천만원도 “빠듯”/평소길닦기 경조비·떡값 필수/관련법규는 돈뜯는 명분 둔갑/업자십장 무마비분담 명문화
수도권에서 최근 5백여 세대분 아파트 신축공사를 시작한 B건설 대표 김모씨(56)는 지난 한해동안 도청과 시청의 주택,녹지,공원과 등 관련부서 담당자에게 4∼5천만원의 로비자금을 지출했다.
이 공사허가를 염두에 둔것이지만 내색을 않은채 관련공무원들의 경조사비,휴가비,명절 떡값 등 명목으로 꾸준히 돈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관계를 맺어두지 않으면 아무 하자나 결격사유없이도 3년이 넘도록 건축허가조차 안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김씨는 『요즘 공무원들은 「뒤탈」에 무척 민감하기 때문에 정작 문제가 생겼을때는 돈을 쓰고싶어도 못쓰는 경우가 많다』며 평소 거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역시 수도권에 아파트를 지은 박모씨(45)도 녹지를 형질변경하고 2년동안 공기로 아파트를 지어 준공검사를 받기까지 쓴 돈이 2억원이 넘는다.
박씨는 『로비자금 부담이 컸으나 관청의 협조때문에 부지확보가 가능했던 것은 물론,공기도 단축됐고 매매차액도 커 이익을 보았다』고 털어놓았다.
박씨는 『아파트 규모가 3백세대가 넘으면 관할관청이 도가 되므로 편법으로 1백세대씩 분리허가를 받아 시·군·구청과 상대,로비자금 부담을 줄이는 신종기법이 성행한다』고 새로운 편법을 귀띔했다.
공사가 시작되면 갖가지 관련법규는 공무원들이 돈을 뜯어내는 명분이 된다. 업자측에서도 일일이 법규를 지키느라 드는 비용보다는 무마비 부담이 적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다.
지난 5월 서울시내에서 5층짜리 상가를 지은 최모씨(43)는 첫 삽질전에 관할경찰서에 「공사신고비」 1백만원을 상납하고 현장을 순찰하는 경찰관들에게 3∼5만원씩을 찔러주었다.
현장 경계에서 1m 이상 도로를 점유하지 못한다든가 흙을 도로에 흘리거나 쌓아놓지 못하게 되어있는 법규 등이 모두 단속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강원 모시에서 7백세대 아파트를 짓고있는 현장소장 C모씨(48)의 월 판공비는 1천만원. 현재 콘크리트 기초작업을 끝내고 철근골조를 세우는 작업을 하고있는 C씨는 시청과 경찰서 관계자들에게 수시로 찔러주는 돈외에 밤이면 상납용 고스톱도 쳐야하기 때문에 1천만원도 빠듯하다는 것이다. C씨는 『규격보다 가는 철근을 사용하고 정화조도 기준보다 작은것을 사용했기 때문에 만일 공무원들의 비위를 건드리면 모두 다시 뜯어낼 판이라 판공비를 아낄수가 없다』는 것이다.
건물이 올라가면서 거래대상은 점차 확대된다.
시공업자가 공사대금을 줄이기 위해 건축법을 위반하듯이 조적·목수·내장업자들도 부실공사로 이익을 남기는 대가로 관계공무원에게 바치는 뇌물을 분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장소장과 소위 「십장」들 사이에는 떡값분담 문제로 시비가 자주 일어난다.
경남 모시의 아파트공사 현장소장 G모씨(42)는 『하도급 계약때 아예 공정별로 각부문 십장들이 상납액의 50%를 부담하도록 명문화 한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지난달 조적과정에서는 해당십장이 구청관계자에게 돈을 주었고 이달에는 전기안전검사를 맡은 감리단 감독에게도 돈을 주기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준공검사는 마지막으로 큰 돈이 들어가는 단계이다.
우선 준공에 필요한 소방필증을 얻기위해 관할소방서에 인사치레를 해야한다. 규모별로 스프링클러나 소화기 등을 설치,소방법을 준수해도 대부분 트집을 잡을 꼬투리는 있기 때문이다.
경기 모시의 아파트 건설업자 김모씨(46)도 『소방서는 트집을 잡자면 한도 끝도 없으므로 상납을 안할수 없다』고 말했다.
소방필증을 받아내면 건축허가부서와 준공검사를 받아내기 위한 마지막 거래가 시작된다. 건물규모에 따라 최하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준공비」가 건네지지 않으면 얼마든지 준공을 늦출수 있다. 하자가 명백할 경우 「준공비」가 몇곱씩 뛰는 것은 물론이나 별다른 하자 없이도 준공비를 주어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 준공전에 입주가 되기 때문이다.
D시의 아파트 건설업자 박모씨(48)는 『입주자에게 잔금을 받아 공사대금을 치러야하므로 준공전에 입주를 시키는 것이 보통이고 이것만으로도 관게공무원에게 돈을 주어야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대기업의 경우도 액수만 다를뿐 양상은 같다.
수년전 사우디공사를 마치고 귀국,정부발주 도로공사 현장소장을 지냈던 A건설 최모씨(40)는 국내 건설회사의 이중성과 공무원들의 노골적인 뇌물요구에 놀랐다.
사우디에서는 엄격한 규제를 잘 지키며 공사해온 이 회사가 국내에서는 수천만원이 소요되는 현장 안전시설조차 전혀 하지않고 감독나온 관계자에게 5백만원을 주는것으로 해결하는 것을 본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공사가 진척되면서 공정 10% 단위로 중간검사를 나오는 감독에게 상납하는 것 또한 관례였으며 외국 건설현장 같으면 모두 뜯어내고 다시 시공해야 할 하자가 발견돼도 뇌물액수만 높아지면 무사통과였던 것이다.<특별취재반>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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