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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혁명 「왜곡」/강병태 베를린특파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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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혁명 「왜곡」/강병태 베를린특파원(기자의 눈)

입력
1991.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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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 등장이후 소련의 혁명적 변화를 제대로 이해,예견하는데 철저히 실패해온 보수적 시각들은 「공산주의 소멸」,러시아혁명의 「역사적 과오」를 강조하는데 집착하고 있다. 이 논리는 『고르바초프는 개혁에 우유부단했던,구제할 수 없는 공산주의자』란 규정으로까지 이어진다.그러나 이는 분명 기회주의적인 역사 왜곡이다.

러시아혁명은 제정의 폭압과 노예상태의 빈곤에 신음하던 러시아민중의 장구한 변혁열망의 소산이었다. 척박한 후진적 환경에 절망하던 러시아민중에게 공산주의와 마르크스­레닌은 혁명의 한 실마리였을 뿐이다(김학준 러시아혁명사). 혁명후의 러시아,소련은 분명 비약적 발전을 이룩했다. 스탈린독재의 해악은 후진적 러시아사회의 숙명이 공산주의 도그마와 결합돼 만들어낸 비극이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시대와 사회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민중의 복지와 자유를 해치고 있는 공산통제체제를 「발본개혁」해야 한다는 소련지식 엘리트들의 사회적 합의였다. 소련의 지배엘리트들은 70년대말 폴란드 자유노조운동이 공산통제체제의 권위를 사실상 전복한 것에서 『공산주의가 양성한 시민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공산통제체제의 위기』를 절감했다.

이 위기의식은 고르바초프 등장이전인 83년 현 소련사회학 회장 자스라프 스카야가 주도해 작성한 「노보시비르스크 보고서」를 통해 다원적 대중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체제혁명이론,페레스트로이카 이념을 체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 혁명의 향도로 선택된 것이 고르바초프다.

고르바초프는 거대국 소련이 선택한 인물답게 공산당 지배체제 종식·통제적 연방해체 등 내부혁명과 함께 냉전대결 종식·동구해방 등 세계질서의 혁명을 파격적·영웅적으로 이룩해 왔다. 이 신사고외교이론 또한 83년 아르바토프의 저서에 「소련과 세계가 살길」로 정리돼 있다.

러시아혁명 당시 「공산주의 악령」 봉쇄와 제국주의적 기득권 고수를 위해 제정복고를 꾀하는 백군의 편에 섰던 서방 자본주의국들은 소련봉쇄로 냉전대결을 초래했다.

공산주의는 망해도 소련이란 땅덩어리는 존속한다. 우리의 갈 길도 공산주의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주장은 왜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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