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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사태」의 4각진단/홍콩(특파원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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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사태」의 4각진단/홍콩(특파원리포트)

입력
1991.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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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국 편승 개혁파 공격·저항시민 대치등/정변의 희극적 반전불구 「천안문사태」와 비교【홍콩=유주석특파원】 이번 모스크바 정변의 배경과 진전은 여러면에서 2년전 북경의 천안문 사태와 비교되고 있다.

경제난국에 편승해 강경보수파가 급진개혁 세력을 공격하고 천안문 광장 대신 러시아공 의사당건물을 무대로 탱크와 저항시민이 대치한 상황 등이 우선 외견상 상당히 닮았다.

그러나 정변의 희극적 반전은 고르바초프가 결코 조자양은 아니며 무엇보다도 91년 모스크바의 상황이 결코 89년의 북경과 같을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북경은 모스크바를 훨씬 앞서 개방과 개혁을 시작했지만 정치의 다원화,정치제도의 개혁을 금지시키고 소위 「공산당 전정」을 불가침의 성역으로 고수하고 있다.

이에비해 모스크바의 개방과 개혁은 비록 한발이 늦었지만 북경의 지도자들이 보기에 지각변동과도 같은 정치개혁을 수반하며 민선지방 의회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냈다. 또 셰바르드나제나 옐친과 같은 지도부내 급진개혁 세력의 지지기반과 조직도 이미 확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음이 이번 사태에서 드러났다.

중국에도 소수민족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소련의 그것과는 비교될 정도가 못된다.

공산주의 진영의 두 강대국은 고르바초프 등장과 정통교조주의의 포기이래 이미 가는길을 달리하고 있다.

조자양은 10년 경제개혁으로 지식인·학생과 국영기업 책임자·자영기업 및 상인층의 지지를 얻고 있었으나 조직되지 않은 이들 지지역량은 중국의 권력구조상 가장 기층에 처한 정치세력의 형성과 거리가 먼 세력이었다.

이번 사태가 진행되면서 옐친과 셰바르드나제 등 소련의 개혁파가 이미 확고한 조직과 광범한 지지기반을 배경으로 8인 비상사태위의 KGB의장 등과 직접 전화통화 등을 통해 실질적 정치압력을 행사할수 있었던 상황은 2년전 북경의 6·4사건에서는 상상할수 없었던 일이다.

이번 소련 쿠데타의 실패에는 엉성한 거사계획과 함께 여러요인이 꼽히고 있으나 미영 등 서방국가의 압력도 중요한 쿠데타 저지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아들이는 면에서 북경과 모스크바는 판연히 다르다.

소련과 서방국가들의 관계변화는 국제사회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이말은 소련의 국내정세가 국제정치에 영향을 미치며 거기에 비례해 국제사회의 압력을 소련 지도자들이 결코 소홀히 할수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에 비하면 중국은 근본적으로 폐쇄적인 대국으로 중국의 내정이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소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다.

6·4때 부시 미대통령은 등소평과 다급하게 전화통화라도 해보려 시도했으나 북경은 문을 걸어 잠근채 아예 서방세계의 압력을 도외시할수 있었다.

모스크바와 북경의 차이점은 한마디로 『소련에는 등소평이 없고,중국에는 옐친이 없다』는 말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련에는 경제적 개혁과 정치적 보수라는 두바퀴 마차를 끌어갈 등소평이 없고 반면에 중국에는 내부적으로 개혁세력의 구심점이 되고,또 국제사회가 지지를 모아 보낼 대상으로 옐친만한 개혁파 지도자가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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