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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주의/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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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주의/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1.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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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람들은 조크를 좋아한다. 조크의 대상은 대개 최고통치자와 세상형편이다. 요즘 같으면 고르바초프와 그의 페레스토로이카가 그 과녁이 된다. 다음은 이 며칠 온 세상을 놀라게한 크렘린 정변극 직전에 알려진 그런 조크의 근작 몇편이다.­모스크바 거리를 지나던 고르바초프가 정육점 앞의 긴 행렬을 발견했다. 그는 즉시 대책을 지시한다. 이윽고 트럭 한대가 정육점에 닥친다. 트럭에 의자가 잔뜩 실려있다.

­농촌 시찰길의 고르바초프가,수박 한 덩이를 들고 오는 농군과 맞닥뜨렸다. 고르바초프는 그 수박을 사자고 했다. 농군이 말한다. 『골라보시오』 『수박이 한덩이뿐인데,뭘고르나?』 농군이 대답한다. 『우리도 당신을 그렇게 골랐소』

­고르바초프가 손자를 크렘린으로 데려왔다. 야조프 국방장관이 말했다. 『역시 장군감이네요. 발을 버둥거리는 것을 보니…』 파블로프 수상(당시)은 딴 소리를 했다. 『아니오,은행가가 될것같소. 손을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니…』 그러자 고르비초프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될거요. 보시오, 기저귀를 적셔 놓고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지않소』

그에 대한 비아냥은 국내에서 만이 아니었다. 망명길에서 돌아온 구동독의 민요가수 발트·비어만은 동베를린에서 가진 첫 공연에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

『전에는,대포는 있고 버터가 없었소/이제는 자유는 있고 버터가 없구려/그래서 고르비,내가 말을 해야겠소/백성은 먹어야 함을­』

이만하면 고르바초프가 왜 지금같은 곤혹을 당해야 한는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고르바초프의 몰락을 점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노스트라다무스가,금년 여름 고르바초프의 실각을,벌써 4백년전에 말했다는 따위는 접어 두더라도,임기를 마친 미중앙정보국(CIA)의 웹스터 국장이 『(구약 출애굽기의)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고르바초프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은 지난 5월말이다. 지난번 모스크바를 아홉번째 방문,고르바초프와 옐친을 만났던 전 미국대통령 닉슨이 뉴스위크지(91·7·29)에 기고한 말의 끝맺음도 그와 꼭같다.

『(역사에 비추어 볼때) 개혁의 씨를 뿌린 사람은 대개 그 열매를 거두지 못한다』

그렇다면,이번 정변극은 이미 예정됐던일일까. 꼭 그렇다고만은 할수가 없다. 아무도 고르비 손자를 촉망하던 그의 측근들이 쿠데타 8인방에 낄줄은 몰랐다. 4년동안의 모스크바 근무를 마친 매틀로크 주소 미국대사는 지나주 이임회견에서 『고르바초프에게 별 문제는 없는 것으로 나는 본다』고 단언하고 있다. 적어도 이 회견 바로 다음주 월요일 새벽에 쿠데타가 일어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그래서 그 정변극의 충격은 더 컸고,온 세계를 동시뉴스권으로 묶은 전자통신 혁명의 성과가 그것을 더욱 증폭시켰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그 충격이상의 당혹감을 느낀 것은,그 전자통신혁명 덕택에,우리 우방국의 대통령과 수상들이 재빨리 그 정변국을 규탄하고 제재를 밝히는 장면을 보면서도,우리 대통령의 소신참모습은 접할 길이 없는데 있었다.

신문을 보건대,정변극당일 우리 대통령은 두 차례 보고를 듣고 「예의주시」를 지시했다. 보고는,사태는 아직 유동적이나,한소관계에 큰 영향이 없으리란 것이었다고 한다. 30억달러의 대소경협은 「나라와 나라사이의 약속」이므로 그대로 집행해야 할것이라고,관변을 인용한것이 틀림없는 신문해설은 말하고 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정변이 성공했으면 세상은 냉전시대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정변이 실패해도 한동안 소련은 혼란에 빠질수 밖에 없고,이번 사태가 대소투자의 위험부담이 얼마나 큰지를 경고하고 있는데도 한소관계에는 별 영향이 없다? 그들은 한소경협 30억달러의 크기,그 국제적인 의미를 알고나 있는 것일까. 선진대국들이 정변을 규탄하며 내두른 경협중단의 카드가 고작 미국의 식량원조 신용 20억달러,EC 12개국을 통틀어 10억달러,영국의 기술원조 8천만달러쯤인것을 생각하면,30억달러 라는 돈이 마음대로 움직일수 있는 돈이 아님은 쉬 알만하지 않는가.

그보다 더 딱하고 걱정스럽기는 「예의 주시」의 몰가치성이다. 그 구조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때,건설공사비 몇억달러를 들먹이며 이라크 규탄과 국제적 제체동참을 추춤거린 것,더 거슬러 올라가,소련의 KAL기 격추때 「제3국」 운운한 것과 상통한다. 왜 우리정부는 침략·쿠데타·만행을 나쁘다고 못하며,그것을 규탄하는 국제조류마저 제대로 타지 못하는가.

이것은 그저 외교상의 기교를 지적하고자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더 근원적인 것,우리정부의 도덕성과 자유·정의에 대한 소신을 의심받을까 걱정이고,그렇게하고도 국제사회를 살아 가야할 이 나라의 품위와 신용이 온전할까 염려스러운 것이다. 크렘린 정변의 결판이 난뒤에 나온 대통령과 정부대변인이 자유·민주를 말하고 소련 시민의 용기를 칭송한 것은 좋으나,그 높은 격조가 오히려 뒷북 수사로만 들리더라는 얘기다.

이런 몰가치의 세계관을 이름하여 상황주의라고 한다. 상황변화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거기에는 선과 악,시와 비의 구별이 없다. 숫제 「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개인의 것이라면,그 나름의 처세로 쳐주고,그 후과를 그 스스로 거두도록 하면 그만일 수가 있다.

그러나 한 나라가 상황주의에 빠지면 어찌 되는가. 그런 나라가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제구실을 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나라가 국가목표를 세우고,거기로 온 국민의 힘을 모을수가 있을 턱이 없다.

크렘린 사태와 우리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저어한 것이 바로 이점이다. 지금 이 나라가 바로 상황주의 국가 아닌가. 그 상황주의가 외교는 물론 내정까지 관철하는 6공의 「국시」 아닌가. 이래 가지고야 ,북방정책과 통일은 고사하고,눈앞에 중첩된 정치일정이나마 제대로 소화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6공이여,내가 말을 하겠소­이제는 상황주의를 버려야 함을…』<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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