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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안정 세계평화와 직결 실감/「3일천하」 분석 특파원 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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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안정 세계평화와 직결 실감/「3일천하」 분석 특파원 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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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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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서 지원꺼리다. 톡톡한 대가/독립언론 공포속 진실보다 큰 힘/견제국 없어져 세계지배 심화 우려도소련 보수파의 쿠데타 기도가 결국 「한여름밤의 꿈」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 세기적 정변의 발발순간부터 이와관련된 국내외의 뉴스를 신속 정확하게 보도해온 한국일보는 이번 사태에 대한 세계 각국의 입장과 대응방안을 점검해보기 위해 특파원 전화방담을 마련했습니다.<편집자주>

▲정일화특파원(워싱턴)=이번 소련 쿠데타는 세계 역사상 가장 잘 조직된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모양새로는 그랬습니다. 정권 제2인자인 부통령이 쿠데타 주동자로 나섰고,그 밑에 4백만 군대를 호령하는 야조프 국방,특수부대를 가진 내무장관 및 KGB의장까지 포함해 장관급 이상만 8명이나 가담했으니까요.

이런 막강한 쿠데타 음모가 성공하지못한 이유는 이들 쿠데타군의 힘이 약히거나 조직이 서툴렀다고 보기보다는 역시 소련 국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이 더 강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미국의회는 쿠데타 실패후 소련에 긴급경제 지원을 할 방안을 찾고 있고 이중에는 최혜국 대우의 결의도 포함하고 있고 미소 관계가 급격히 진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러시아공 청사서 방송

▲문창재특파원(동경)=일본 신문들은 쿠데타가 실패한것은 독립언론 매체들의 활약에도 한 원인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의 메아리」란 라디오 방송이 방송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공화국 청사안으로 방송시설을 옮겨 24시간 「진실」을 보도했고,인터팍스 등이 세계의 언론매체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것이 큰 힘이 됐다는 겁니다.

이번 사태로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 기자들은 편집국장 배척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편집국장이 쿠데타에 관련됐다는 주장입니다. 국가중대사와 언론의 역할을 생각케하는 대조적인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유주석특파원(홍콩)=이번 소련정변의 발생과 전개과정을 보며 2년전 북경의 천안문사태를 연상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소엔 등소평 없었다”

축출된 개혁파 지도자를 지지하는 대규모 군중이 탱크를 앞세운 군부의 무력과 대치한 급박한 상황 등이 외면상 아주 비슷해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91년의 모스크바와 89년의 북경이 결코 똑같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모스크바와 북경의 차이점은 여러가지로 설명할수 있겠지만 이번 정변진행 과정을 놓고 『모스크바에는 등소평이 없고 북경에는 옐친이 없었다』는 상징적인 비유가 양국 차이의 일단을 잘 설명해주고도 있습니다.

▲김수종특파원(뉴욕)=소련에서 발생한 이번 궁정쿠데타는 탈냉전의 동서화해 시대에 접어든 세계 각국에 경종을 울려주었습니다.

즉 과거 「붉은제국」으로 군림했던 소련의 침몰은 결코 서방의 평화와 안정에 무관치 않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김영환특파원(파리)=지난 7월 런던의 서방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개혁이 선행돼야 본격적인 지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논리는 전세계를 경악케한 쿠데타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국과 일본의 태도입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그토록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귀중한 존재인것을 알았다면 왜 G7때 조건없는 확실한 원조를 약속하지 않았느냐는 점입니다.

더욱이 야코블레프 등 고르바초프의 보좌관들은 그가 빈손으로 돌아갈 경우 보수파들이 소요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그의 예언은 맞아 떨어진 셈이죠. 문제는 왜 미국이 이를 방관했느냐 하는 점입니다. 특히 CIA는 뭘했느냐는 의혹이 있습니다.

미국은 소련이 민주화되어 혼란이 없는 강국이 되는것을 바라는게 아니라 각개 공화국으로 분할되어 거대한 힘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것이 미국의 국익에 더 부합된다고 여길지도 모를일입니다. 때문에 원조의 방법론이 크게 문제될 것으로 보입니다.

○독,사태진전 예견

▲강병태특파원(베를린)=이번 사태의 성격과 전개양상을 가장 정확히 파악,예측한 나라는 역시 소련에 가장 정통하면서 유착해 있는 독일이었습니다.

언론은 아무래도 센세이셔널 한 측면을 무시할수 없지만 독일 지도자들은 시종 쿠데타 실패를 단호히 외쳤습니다.

▲원인성특파원(런던)=쿠데타 진행과정에서 영국에서는 메이저 내각과 야당간에,또 집권 보수당안에서 몇가지 논쟁이 벌어졌었습니다.

영국 정부의 대응과 관련,메이저 총리는 다소 신중한 입장을 유지한데 반해 대처 전 총리는 『소련의 민주주의는 결코 후퇴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소련 국민들에게 거리에 나가 항거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이를 두고 메이저 총리는 『이곳에 앉아서 소련 국민들 보고 맨주먹으로 탱크에 맞서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못마땅해 했습니다.

▲최해운특파원(싱가포르)=소련의 궁정쿠데타 드라마는 미소 등 초강대국의 급격한 정치혼란이 지역경제와 정치에 얼마나 예민하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줬습니다. 쿠데타 발생직후 싱가포르 홍콩 등 국제무역항에서는 소련은행간의 대금결제와 상사들간의 상담이 중단되는가 하면 다음달 모스크바서 열릴 예정이었던 싱가포르 무역·산업박람회 일정이 취소되는 등 「소련위기」가 그대로 경제분야의 「위기」로 나타났습니다.

▲문=북방영토 반환문제라는 「반세기현안」이 있는 일본도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소련의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던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오랜 씨름끝에 『양국간에 영토문제가 존재한다』는 인정을 받아낸 일본으로서는 그의 퇴장은 이 문제의 원점회귀나 다름없는 충격이 아닐수 없었던 겁니다.

▲강=외부세계가 고르비 실각을 쉽게 기성사실로 단정한 것은 소련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과 오해가 작용했다고 봅니다.

「고르비 실각」에 대한 경고는 오래전부터 많았지만,소련내외의 경고는 「색깔」이 크게 다릅니다.

○서방보수파,「고」 견제

소련내 경고의 방향은 『고르바초프 개혁이 실패하면 쿠데타로 군부가 집권하는데,경제붕괴로 군부 지도자들은 말을 타고 다니고 국민 모두가 총을 들고 서로 싸울것』이란 개혁파 언론인이 쓴 가상소설이 상징합니다.

이는 셰바르드나제의 사임연설처럼 국내외에 고르비 지지를 촉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반면 외부세계,특히 서방보수 진영의 고르비 실각 경고에는 「고르비 선풍」을 견제하고 소련의 「잔존위험」 및 「지원무용」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습니다. 바로 이같은 편견이 이번 쿠데타에 곧장 「냉전 복귀」를 외치는 반응으로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일 정부대응 뒷북친셈

▲문=일본정부도 대응이 너무 신중하고 늦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습니다. 미국 영국 등 강대국의 태도를 살피느라고 자신있게 쿠데타 진영을 비난하지 못한게 일 국회에서 문제가 되자 가이후(해부준수) 총리는 발언의 강도를 조금씩 높여갔지만 결과적으로는 언제나 뒷북 이었어요.

▲김영환=이번 쿠데타 성패에 대해서는 초기에 신문마다 전문가마다 달라 갈피를 잡을수 없었던 것도 특징이었습니다. 어떤 분석가들은 고르바초프의 경제는 외교만큼 성공을 못해 처참한 실패를 거두었기 때문에 쿠데타 반대는 도시의 일부 지식인에 한정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어떤 분석가는 실패가 시간문제라고 했습니다. 그 실패의 이유엔 병력배치 지연과 옐친을 체포하지 못한 사실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옐친,그동안 오명씻어

▲정=옐친은 말할것도 없이 쿠데타 좌절의 선봉장을 맡아 한때 그가 갖고 있던 「술주정꾼」 「허풍쟁이」같은 오명을 완전히 벗고 일약 소련 민중혁명의 영웅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역시 크리미아 별장에서 3일간이나 감금돼있으면서 온갖 위협을 무릅쓰고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번 쿠데타를 실패로 이끈 주된 요인이라고 봅니다.

▲강=사태발생 직후부터 독일지도자들과 언론은 소련에 대한 경제지원의 당위성을 강조하며,그동안 지원을 기피한 미국 등 서방보수 진영을 비판했습니다.

사태종식후 겐셔 외무장관은 『독일 능력의 「마지막 경계선」까지 지원할것』이라고 천명했습니다.

이는 미국과 영국이 고르비가 아닌 옐친을 「영웅」으로 부각시키면서,경제지원 약속은 선뜻 내놓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앞으로 소련지원을 둘러싼 서방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과 분열은 심화될것이 분명합니다. 소련지원 문제는 근본적으로 각국의 능력보다는 전략적 경제적 이해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일종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문=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용기있는 저항으로 쿠데타가 3일 천하로 막을 내리자 일본정부는 러시아 공화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새로운 방침을 세웠습니다. 이번 사태로 고르비의 파워가 약화되고 옐친이 급부상했으니 다음의 소련 대통령은 엘친이 아니겠느냐고 보는 것이지요. 쿠데타 발생이후 대소지원 동결책을 해제한데 이어 러시아 공화국에 새로운 원조를 제공하기로 한것은 쿠데타에 대한 대응속도보다 훨씬 빠르다는 지적입니다.

▲최=싱가포르 국제상공회의소의 그레함·해이워드 사무국장은 기업인들에게 『소련에서의 정치혼란이 회복됐다고 하지만 경화부족과 생필품난 등 근본적인 경제적 난관이 그대로 남아 있는한 소련 및 동구권 국가와의 교역은 신중을 거듭해야 할것』이라고 충고하고 많은 기업인들이 이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김수종=오는 9월의 유엔총회에서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됐던 미소 화해분위기와 세계평화 무드가 이번 소궁정쿠데타로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한때 유엔본부 곳곳에 팽배했습니다.

○공화국독립 여부 관심

▲김영환=발트3국에 대한 미국의 독립승인 여부도 눈여겨볼 대목인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세계가 민주주의의 이념으로 통일되는 것은 좋으나 미국에 모든 판단을 맡겨야 한다는데 대해 불안을 떨쳐버릴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튼 10년쯤뒤의 소련은 주권공화국들로 구성된 일종의 커먼 웰스(느슨한 연방국가)가 될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소련은 결국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 발트3국의 분리독립을 인정하고 경제구조를 시장경제 체제로 재빨리 정비해야 할것이며 아마도 쿠데타 실패는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는 계기가 될것입니다.<정리=장현규기자>

정일화<워싱턴>

유주석<홍 콩>

문창재<동 경>

김영환<파 리>

김수종<뉴 욕>

최해운<싱가포르>

강병태<베를린>

원인성<런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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