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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신중/황소웅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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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신중/황소웅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1.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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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이렇게 될줄 알았더라면 전투사단을 파견하는게 더 좋았을 것을…』 작년 걸프전이 예상을 뒤엎고 미국측의 승리로 간단히 끝났을 때 나왔던 말이다. 의료진이나 수송단을 보낼바에는 차라리 전투병력을 파견하는 편이 여러모로 훨씬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섞인 뒷말이었다. 그러나 장기전의 우려가 팽배했던 개전전의 상황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결단 이었다. 그래서 신중을 기하지 않을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뒤늦게 비전투요원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때아니게 지금 걸프파병 얘기를 떠올리는것은 소련의 쿠데타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끼는게 있기 때문이다. 소련의 쿠데타가 3일 천하로 간단히 끝나버린 지금에 와서 뒤늦게 느껴지는 것은 왜 여러 우방들처럼 쿠데타 주동세력을 비난하지 못하고 고르바초프 지지를 떳떳히게 선언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다. 물론 너무나 갑자기 닥친 일이라 사태파악도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찬반의사를 명백히 밝힌다는 것은 모험이고 위험이 따르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미국 일본과 서구제국 등 여러 우방들은 그 짧은 3일동안 대통령이나 총리 등이 직접나서 몇차례씩이나 쿠데타를 규탄하고 고르바초프를 지지하는 태도를 명백히 했다. 그사이 우리 정부의 입에선 무슨말이 나오는가 궁금해서 기다려 보았지만 이렇다할 공식 반응이 없었다. 실각되었다고 발표된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 표명은 앞으로 사태진전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감히 하지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쿠데타 자체가 불법적이고 나쁘다는 원칙적인 정의정도는 정부에서 내려줄 것이라고 생각 했었다.

특히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한국과의 특수한 관계는 이미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기 몇시간전에 나온 정부의 첫 공식성명은 너무나 신중을 기한 탓인지 어느쪽이 나쁘고 그른지,어느편을 지지하고 반대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믿음직한 우방의 뒤를 따라 반발짝이라도 따라 갈줄 알았는데 너무 애매한 반응이다.

「사태를 염려하면서 추이를 예의 주시한다」거나 「폭력이나 유혈사태 없이 평화적 방법으로 조속히 정상화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중립적 입장에서 누구나 할수 있는 지구촌 이웃으로서의 바람이다.

「소련의 개혁정책이 계속 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대목에서도 어느편을 지지하는지 명확지 않다. 쿠데타 주동세력 역시 개혁정책을 계속하겠다고 처음부터 밝혔기 때문이다. 또 「정부는 경협자금 집행문제는 앞으로의 소련사태 추이를 보아 결정할 것』이라고 한 대목에서도 역시 정부의 의지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만일 쿠데타가 성공해서 고르바초프가 끝내 쓰러진다면 경협제공을 재고한다는 뜻으로도 들리고 쿠데타 세력이 집권해서 우리가 지지하는 개혁정책을 계속 추진한다면 예정대로 주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우방의 지원사격을 끈질기게 요구해온 미국에서 볼때 얼마나 고마운 인사로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도 의리가 깊다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천군만마의 원군으로 비쳤을까. 북한이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수 없어 긍정도 부정도 아니고 어느편에 대한 찬성도 반대도 아닌 외교수사의 기교라고 자랑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이 성명은 미국의 부시나 소련의 고르바초프 양쪽을 모수 섭섭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한국도 미­일이나 서구의 선진국들처럼 힘이 있다면 어느쪽을 규탄하고 어느쪽을 지지하는 태도를 분명히 할수 있다고 변명한다해도 이번엔 좀 너무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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