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발발 소식에 휴가중단 업무유지 맹활약/「페레스트로이카 레이디」 애칭… “민주화 확신”『큰 유혈사태 없이 소련의 개혁과 민주화가 지켜져 얼나마 기쁜지 몰라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한소련 대사관에 근무하는 서애경양(26)은 22일 폭주하는 축하와 격려전화를 받으며 연신 웃음꽃을 피웠다.
전세계 소련공관에서 유일한 외국인 직원이 서양은 『한국인인 내가 소련의 첫 외국인 공관원이 됐다는 사실이 바로 페레스트로이카의 상징』이라며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열성팬』이라고 소개했다.
「대한민국 주재 소비예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맹 대사관 비서」가 정식직함인 서양은 소련의 3일 천하 쿠데타 동안 제일 긴장하고 바빴던 한국인 이었을 수밖에 없다.
서양은 1주일 예정의 휴가 첫날이던 19일 하오 소련 문화원에 전화를 걸었다가 「쿠데타 발발」 소식을 들은 즉시 휴가를 중단하고 대사관으로 출근,3일동안 어쩔줄을 몰라하는 소련인들을 위로하며 대사관 업무를 유지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대사관에 설치된 타스통신 텔렉스에서 띄엄띄엄 나오는 암울한 뉴스를 보며 침통해 하는 소련직원들에게 『모든게 잘될 것』이라고 위로하면서 하루 3백여통씩 쏟아지는 문의전화에 응답해주는 격무를 치렀다.
퇴근후에도 밤새 TV뉴스를 모니터하고 신문을 읽은뒤 아침마다 뉴스브리핑을 해주었다.
3년보다 더 길었던 사흘을 넘기고 22일 아침 출근하자 대사관 직원들은 모두 어린애처럼 기쁜 표정으로 서양에게 『스바시바(고맙다)』를 연발했다.
『어느 사회든 새로운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는 갈등이 있게 마련이고 이번 소련 쿠데타도 그런 갈등의 표출이었다』고 해석하는 서양은 『그러나 개방과 민주화로 가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제 누구도 돌이킬수 없다』고 말했다.
한소관계 개선이 남북한 긴장완화에도 크게 기여한 만큼 소련사태는 우리 국민들에게도 지대한 관심사였다며 서양은 『앞으로 두나라의 우의와 친선은 더욱 굳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 영동여고와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한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지난해 12월17일 주한소련대사관이 문을 연 날부터 근무를 시작한 서양은 『전세계가 한가족이된 시대에 그맨 앞줄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제일 소중하다』고 말한다.
방문객 안내와 소콜로프 대사의 개인비서 역할,대사관의 업무비서 임무까지 폭넓게 해내는 서양은 「페레스트로이카 레이디」라는 애칭과 함께 대사관의 보배로 통한다. 러시아어 영어 일본어 등 3개 국어를 구사는 어학실력이 한소 민간외교사절 노릇에 단단한 밑받침이 돼주고 있다.
『책도 없고 사전조차 없던 때에 몇차례 포기할까 했었던 러시아어 공부를 끝까지 해낸 보람을 느낀다』며 서양은 『너무도 사랑하는 소련의 문화와 예술전반에 대해 공부를 계속해 소련의 모든것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소련이 잘되고 한소관계가 더 발전해야 나도 잘되는 것』이라고 야무지게 말하는 서양은 소련을 드나드는 동료들에게 책을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잊지않는 욕심꾸러기이기도 하다.
망친 여름휴가 대신 겨울의 소련여행을 대사관측이 권하고 있지만 서양은 『소련은 신혼여행지로 남겨두고 싶다』며 『사실은 아직 여권도 없는 우물안 개구리』라고 수줍게 웃었다.<신윤석기자>신윤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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