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이후의 소련이 보수파의 계산대로 돼가는것 같지 않다. 만일 쿠데타세력이 27년전 흐루시초프를 밀어냈을 때처럼 「궁중혁명」으로 사태를 손쉽게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면 계산착오일 가능성이 짙다.27년전과 지금의 차이는 「이념적인 스탈린비판」과 제도적 민주화의 차이만큼 크다는 사실을 쿠데타세력이 과소평가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지금의 개혁파는 직접선거로 뽑힌 러시아공화국의 대통령을 거점으로 하고 있어 쿠데타세력으로서도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되고있다.
소련내의 움직임이 유동적인 것과 관련해서 서방측이 보다 강경한 대응을 보이고 있음이 주목된다. 쿠데타 초기단계에서 「관망적」 태도를 지켰던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복귀와 소련에 대한 경제원조 중단경고를 분명이 했다.
부시 대통령의 강경태도는 쿠데타 실패 가능성을 전제로하는 포석일 가능성이 크다. 또 백악관이 일단 모스크바의 합법정부 복귀를 요구한 이상,만일 쿠데타가 성공한다해도 크렘린의 보수파에게는 힘겨운 짐이 될것이다.
결국 어느 모로 보나 쿠데타는 무모한 모험이다. 모스크바의 국가비상사태 위원회가 발표한 비상사태 포고문도 이번 시도가 전형적인 후진국형 군사쿠데타임을 보여주고 있다. 『내분과 혼란,무정부 상태의 위기를 극복하고 법과 질서를 회복한다』는 것을 거의 유일한 정치·도덕적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소련의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으로 봐 쿠데타가 성공한다해도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은 확실하다. 또한 쿠데타는 소련의 안정된 발전을 위해 결코 바람직스런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련은 세계의 평화와 민주적 발전을 보장하는 중대한 책임이 지워진 나라임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이미 공산체제가 와해된 동유럽은 물론,독일로부터의 철군과 유럽에서의 군비축소 그리고 동북아에서는 한국과의 화해 등 소련은 세계평화를 위해 막중한 공약과 책임을 성실하게 다해야될 위치에 있다.
크렘린의 비상사태 위원회가 공약한 것처럼 모든 대외공약을 성실하게 지키고,안으로도 개혁을 포기하지 않겠다면 쿠데타의 정치적·도덕적 명분은 내세울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전후 반세기 가까운 적대관계를 청산한 우리로서는 소련의 안정적 발전을 선의의 이웃으로서 바라고 싶다.
그런 뜻에서 소련의 위기가 상식과 순리에 따라 평화롭게 수습되기를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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