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한 행동… 합헌논쟁 일으켜/사태 반전땐 연방대통령 유력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실각이후 모든 반쿠데타세력을 결집시키는 중심인물로 급부상하고 있다. 러시아공화국 최초의 민선대통령으로 급진개혁파인 그가 그간의 모든 개혁을 중단,혹은 후퇴시킬수 있는 강경보수파의 권력장악에 반발하리라는 것은 어느정도 예상됐었다. 그러나 쿠데타직후 그가 취한 일련의 단호한 행동은 보수파의 「예상치 못한 기습」으로 고르바초프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모든 개혁세력을 신속하게 집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첫번째 싸움은 심리전이었다. 고르바초프의 실각과 함께 수십대의 장갑차가 그의 집무실이 있는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청사를 둘러싸고 「무력시위」를 벌이자 그는 감연히 장갑차위에 올라가 강경 보수파의 권력장악을 반헌법적인 쿠데타로 규정하고 시민들에게 총파업 등 불복종운동을 벌일 것을 촉구했다. 뒤이어 나온 옐친의 성명은 도전적임과 동시에 고도의 전략적 계산이 담긴 것이었다.
그는 성명에서 고르바초프축출 쿠데타에 가담한 모든 군인과 KGB 요원들에게 대열을 이탈하라고 「명령」했으며 러시아공화국 영토안의 모든 중앙정부기관 통제권을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인 자신이 장악한다고 「선언」했다.
연방대통령이 「유고」라면 적어도 러시아공화국내의 최고 의사결정권한은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인 자신에게 있다는 논리를 편것이다.
옐친의 이같은 과단성있는 행동과 「전략적」 성명은 고르바초프를 실각시킨이후 일단 「대세」를 장악하는 것처럼 보였던 8인 비상대책위원회에 심대한 타격을 안겨준 것으로 분석된다. 고르바초프의 「건강상」의 이유로 「합법적」으로 권력을 인수했다는 모양새를 갖추려던 비상대책위는 옐친의 의표를 찌르는 역포고령으로 어쩔수 없이 합헌 논쟁에 빠져들었다. 비상대책위는 그들이 합법적으로 권력을 인수했다고 계속 「강변」하기 위해서는 고르바초프의 건강이 그들말대로 악화됐다는 증거를 보여야하는 궁색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명분」에서 밀리는 비상대책위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물리적인 강제력을 동원,제압하는 것이다. 그러나 옐친의 용감한 행동은 이의 행사 또한 어렵게 했다. 5천여명의 시민과 일부 무장병력이 러시아공화국 의회를 둘러싼 채 인간사슬을 형성했으며 또한 T72탱크 10대가 옐친의 「명령」에 따라 본대를 이탈해 옐친을 보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또한 러시아공,우크라이나공,백러시아공 등 3개 공화국의 광부들이 옐친의 총파업 호소에 따라 19일 하오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비상대책위가 「대세」를 확실히 장악하지 못한게 뚜렷해지자 서방측의 대응도 강경한 방향으로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다. 쿠데타 직후 한때 당황한 모습을 보였던 미국은 부시 대통령의 성명을 통해 보수파의 권력장악은 쿠데타이며 쿠데타는 실패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했다. 존·메이저 영국총리,미테랑 프랑스 대통령도 실각한 고르바초프에 대한 지지입장과 쿠데타세력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구동독지역에 소련군이 주둔한 관계로 관망적 자세를 취했던 독일의 콜 총리도 20일 마침내 고르비 복귀를 주장한 옐친을 지지하고 나섰다.
소련 쿠데타세력에 반대하는 이러한 국내외적인 연대가 이루어지게 된데는 옐친이 보여준 사태직후의 단호한 행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수 있다. 옐친의 이번 행보와 관련해 더욱 주목할점은 개혁의 속도와 방법론을 놓고 사분오열돼왔던 개혁파세력이 옐친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르바초프의 오랜 측근으로 활약했던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야코블레프 고르바초프 대통령 전 수석보좌관 등 각 분야의 개혁파 인사들이 옐친과 행동을 같이하고 있다.
만약 이번의 사태가 국내외적 압력으로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진다면,옐친은 쿠데타의 발발로 정치적 타격을 입은 미하일·고르바초프를 대신해 소연방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할게 틀림없다.
그러나 물리적 강제력을 보유하지 못한 옐친이 막강한 조직력과 주도면밀한 준비하에 쿠데타를 감행한 강경보수 세력을 대중동원적인 정치적 책략으로 제압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는다.<유동희기자>유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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