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집위주… 일사불란 장담못해/KGB·내무부 소속군은 “적극”고르바초프의 실각을 몰고온 보수파의 쿠데타는 국가보안위(KGB)의 「정보장악」과 군부의 「물리적 힘」을 배경으로한 것으로 압축되고 있다. 소위 「보안 3총사」로 불리는 블라디미르·크류츠코프 KGB의장,드미트리·야조프 국방장관,보리스·푸고 내무장관 등 3인이 비싱대권을 거머쥔 「8인 국가비상위」의 주요포스트를 점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증거이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고르바초프가 대폭적인 대통령 권력강화기구 개편을 단행하면서 미국의 국가안보회의(NSC)를 본따 국가안보와 국내 치안분야를 하나로 통합한 3인의 안보위원회를 창설,자연스레 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할 수 있었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들의 「반란」은 그만큼 위기의식이 팽배했음을 역으로 보여주는 사실이다.
이같은 위기의식은 하루 아참에 커진게 아니다. 고르바초프의 사회·경제전반에 걸친 개혁정책이 진행되며 이완된 행정공권력의 틈새를 타고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간의 인종분규,발트3국의 연방이탈 움직임,경제 혼란에 따른 체제 전복 위기감이 나돌며 지난해부터 부쩍 보수파의 쿠데타 경고가 이어졌다. 특히 체질적으로 보수수구 세력인 군부가 감지한 위기감은 자신들의 존폐문제와 연계돼 더욱 심각한 지경이었다.
사실 85년 3월 서기장에 오른 고르바초프는 87년 5월을 기점으로 군부를 완전 장악한 것으로 관측돼 왔다.
당시 19세의 구서독 아마추어 비행사인 루스트군이 세스나기를 몰고 붉은 광장에 안착한 사건을 계기로 고르바초프는 소콜로프 국방 후임에 군부개혁파 야조프 현 국방장관을 비롯해 국방차관 16명 대부분과 2백명의 야전사령관중 3분의 2를 소장개혁 세력으로 대폭 교체해 군부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다.
일단 고삐를 거머쥔 고르바초프가 개혁예산 전환에 불가피한 군비축소와 감군의 「아슬아슬한 곡예」에 들어가며 위기감과 불만이 팽대해진 군부는 점차 보수강경 색채를 더하기 시작했다.
최근 옐친 러시아공 대통령이 공화국내 군에서 공산당 활동을 금지시킨 포고령을 기름에 불을 지핀격 이었다.
따라서 군부내 강경파를 대변해온 발레리·오치로프 연방최고회의 국방·안보위원장은 『군은 분열위험이 없으며 믿을만하다』고 단언했다.
현재 소련군은 서로 명령 계통을 달리하는 ▲국방부 산하 연방군 ▲KGB산하 국경경비군 ▲내무부산하 국내보안군(MVD) 등 3편제로 나눠진다. 이들 3편제의 접점이 바로 이번 거사를 단행한 「보안 3총사」로 연결된다. 또 헌법에 부여된 체제수호·치안임무를 책임지고 있는 KGB와 내무부군의 성격상 이들이 이번 군사행동의 주축임을 감지할수 있다.
철저한 사상교육과 규율로 전체주의의 잔재인 「경찰국가」의 첨병이 돼온 이들의 이탈 가능성은 극히 적다.
그러나 연방군의 입장은 다르다. 복무연한 2,3년의 징집병이 70%를 점한데다 다민족국가인 소련을 반영한 인종간 혼합배치 원칙에 따라 정치적 색채와 이익을 달리하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또 16개 군구로 소련전역에 퍼져있는 단위부대들은 일사불란한 중앙명령 계통보다는 지역사령관의 독자적 지휘계통 아래 놓여있다.
때문에 민심이 계속 거부감을 표하고 이들에 대해 총부리를 겨눠야할 상황에서 나타날 결과는 불투명하다. 지난 89년 차우셰스쿠 친위대인 「세큐리타테」와 정규군간의 내전으로 치달았던 루마니아의 예를 소련에 오버래핑 해야할 상황반전도 전혀 배제할수 없는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옐친의 호소에 비록 소수지만 탱크부대가 달려나오고 몇몇 부대가 신권부에 반대를 표명했다는 소식은 「고르비 이후」의 소련 정국에 대한 전망을 더욱 혼미속에 몰아넣고 있다.
위기에 몰린 군보수파는 어쩌면 아무도 원치 않았던 운명의 판도라 상자를 연 셈인지도 모른다.<윤석민기자>윤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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