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시초프와 고르비『국제사회에서 계급투쟁은 끝났다」고 소련의 외무장관이었던 셰바르드나제가 유엔총회에서 선언했을때 세계는 귀를 의심했었다. 혹시 잘못 들은게 아니었나하는 의아심 때문이다. 그것은 3년전,그러니까 88년 9월27일의 일이었다.
그때에 댄다면 고르바초프가 크렘린에서 밀려났다는 소식은 그동안 숱한 「예고편」이 있었던만큼 충격이 덜했을 법함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가 밀려 났다는 사실이 큰 충격을 준것은 그의 「개혁·개방」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일것이다.
전쟁의 공포가 없는 세상,이데올로기의 폭력이 없고 개인의 기본적 인권과 민주체제가 보장되는 평화로운 세계의 꿈이 행여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게 아닌가 세계는 지금 크렘린을 지켜보고 있다.
고르바초프 정부가 무너지리라는 불길한 경고는 지난해 겨울 외무장관 자리를 박차고 나간 셰바르드나제나,개혁파 보좌관이었던 샤탈린이 예언 했었다. 샤탈린은 지난 4월 『현 정부는 무너질것』이라고 단언 했었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흡사 27년전 흐루시초프 실각의 재판같은 사건으로 기록될 것 같다. 스탈린 비판으로 시작된 흐루시초프 시대는 많은 점에서 고르바초프 시대와 공통되고 있다.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비판했던 것처럼 고르바초프는 스탈린주의를 제도적으로 청산했고,흐루시초프의 평화 공존외교를 「냉전청산」으로 결말지었다.
두 사람 모두 관료집단을 주축으로 하는 당내 보수파의 정치적 반란으로 실각했다. 「냉전청산」이라는 단꿈에 젖었던 세계는 이제 크렘의 「궁중혁명」이 세계를 어디로 몰고갈 것인가 불안한 눈길을 모으고 있다.
○극단적 보수 어려울것
지난날의 역사가 하나의 지표가 될수 있다면 크렘린의 궁중혁명이 역사를 되돌려 놓치는 못한다는 낙관적인 짐작을 할수도 있을 것이다.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목에 방울을 단뒤,브레즈네프도 감히 스탈린주의로 되돌아 갈수는 없었다.
한쪽에서는 『연방의 정치적 해체가 멎지 않는다면 소련은 혼란에 빠질것』이라던 고르바초프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70여년전 10월혁명이후 「천하대란」의 시대와 지금을 비교할수는 없을 것이다.
크렘린이 일단 보수파의 손에 넘어 갔다해도,그래서 소련을 자치공화국의 연합체로 탈바꿈하고 다당체제와 시장경제로의 이행이라는 개혁정책이 일단 주춤할것은 확실하지만,한번 흐르기 시작한 역사의 흐름을 영원히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에는 3억 가까운 인구가 2천2백40만㎢나 되는 대륙에 흩어져 사는 소련이라는 나라가 너무나도 크다. 이번 정변으로 구성된 크렘린의 새로운 임자들도 일방적으로 한쪽에 치우치는 노선을 택한다면 그 정치적 대가가 크게 먹힐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위기에 몰린 소련의 경제가 국제사회를 완전히 도외시하기에는 벅찰것이다. 아마도 동·서 화해의 기본적인 노선을 크게 깨뜨리지 않으면서 국내 체제를 보수쪽으로 재정비하는 선에서 시간을 벌려할 것이다.
이 엄청난 크렘린의 「역전극」을 보면서 우리는 제주도에서 능숙한 방문자로 미소를 뿌렸던 고르바초프를 생각하게 된다. 또 그로바초프의 제주도 방문을 「역사적」이라고 떠들었던 기억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역전극」의 경고
우리는 흔히 「북방정책의 성공」이라는 말을 귀가 따가울만큼 들어왔다. 소련이 한국과 국교를 맺은 것도,북한이 핵사찰과 유엔 동시가입을 받아들인 것도 모두가 「북방외교」의 성공덕분이라 했다. 따라서 미구에 중국과도 국교관계가 트일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또 30억달러나 되는 경제원조를 소련에 약속했고,또 일부 집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스크바 공동성명에서 한국이 고르바초프 개혁·개방을 돕기로 약속했다.
모스크바가 차지하는 초강대국으로서의 크기에 비해 한국이 갖는 의미는 작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냉전청산이라는 세계사적 흐름을 타면서 「북방정책」의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해온게 사실이다.
대외관계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런 일이 아니다. 그것을 우리는 크렘린의 역전극에서 또한번 실감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서울모스크바 관계가 당장 바뀌리라고는 보기 어렵지만,외교에 노련한 나라치고 외교를 정치가 독점하는 법은 없다. 그것은 정치보다는 국제정세의 큰 흐름이 방향을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란한 「유엔시대」의 나팔소리를 또 한번 경계해야 할것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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