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유족회」 도일투쟁보고 각성/원고인단 50명 구성 12월 제소/정신대 1명 첫 법정증언 수락징병·징용피해자와 유족 등 1만5천명으로 구성된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회장 김종대·55)의 일본정부를 상대로한 단체소송을 돕기위해 17일 내한한 일본인 변호사들이 19일 소송준비를 위한 조사절차를 마쳤다.
다카키·겐이치(고목건일·47)씨 등 일본인변호사 7명은 서울 종로구 내자동의 내자호텔에서 18일부터 이틀동안 피해자 증언청취와 증거자료 수집을 하느라 침식을 잊을 정도였다.
태평양전쟁 발발 50주년이 되는 12월8일 동경지방 재판소에 유족회 명의의 소송을 내기위해 증거가 확실한 50명으로 대표원고인단을 구성중인 유족회와 변호인단은 특히 사상 처음으로 여자정신대 피해자 1명을 확보했다.
강말자라는 가명으로 알려진 69세의 이할머니는 유족회측의 1년여에 걸친 설득을 받아들여 18일밤 다카키 변호사를 면담하고 법정증언까지 수락했다.
강씨는 20세때인 42년봄 경남의 농촌에서 부산히로시마를 거쳐 남서태평양 뉴브리튼도 라바울까지 강제로 끌려가 3년여동안 종군위안부 노릇을 강요당했던 사람이다.
강씨는 『라바울 밀림지역의 원주민교회를 개조한 위안소에서 다른 조선여자 2명과 함께 짐승보다 못한 생활을 했다』며 『수치심을 무릅쓰고 일본법정에서 모든 진상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강씨는 종전이 된 사실도 모른채 일본군이 달아난 뒤에도 섬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지내다 46년 4월에야 잔류자귀국선을 타고 귀향,반세기 가까운 통한의 세월을 병마에 시달리며 살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인단은 강씨가 지금까지 일본정부의 공식부인과 달리 일제의 징용에 끌려가 종군위안부로 생활한 조선인이 실재했음을 밝혀줄 역사적 증인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강할머니가 끌려간 라바울은 일본 육해군 10만여명이 주둔했던 군사요충지로 44년 2월 종군위안부 2백여명이 미군의 공습을 피해 잠수함으로 소개되던중 기뢰에 충돌,몰사했던 곳으로 알려져 이 숨겨진 참사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카키씨 등은 강씨말고도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왼팔을 잃은 김중례씨(62·여),오키나와 해군부대로 끌려갔다가 미군이 포로가 됐던 강인창씨(71) 등 30여명과도 면담했다.
소송을 대행할 일본인 변호인단은 지난해 10월29일 유족회회원 22명이 개별적으로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사죄 및 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일본 변호사회에 인권구조신청을 내 구성됐다.
회원 22명의 눈물어린 일본내 시위와 호소에 각성한 일본인 지식인들은 「일본의 전후책임을 확실하게 하는 회」(회장 우스키·게이코·여·43)를 만들었고 다카키씨 등 전담 변호인단도 구성됐다.
변호인단은 지난 4월부터 법률적 준비를 하면서 일본내 시민운동단체들에 연대활동을 호소해왔다.
다카키 변호사는 『일본정부는 한일 협정체결로 배상문제가 일괄처리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가간 협정으로 피해자들의 개인적 권리까지 박탈할 수는 없다』며 『일본은 전후책임을 완전히 이행한 뒤에만 진정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수있다』고 말했다. 조사를 마친 다카키씨 등은 일본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소송을 준비할 계획이다.<신윤석기자>신윤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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